[유시민의 세상읽기]진정한 정당정치는 언제쯤…

  • 입력 1999년 7월 26일 19시 20분


DJP는 금년에 내각제 개헌을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자민련이 당의 존재근거인 내각제를 일단 포기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합당 대신 공조를 더욱 굳건히 하겠다니 정말 별일도 다 있다. 자기 몫 챙기기에는 고래심줄같던 자민련이 아무 대가도 없이 그런 엄청난 양보를 했으니 말이다. 두 ‘정치9단’이 총선 이전에 합당하기로 이면합의를 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설득력을 가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정치는 생물’이라는 DJ의 말을 달리 해석하면 ‘한국정치는 권모술수의 정치’라는 뜻이 된다. 정치 지도자의 이해관계와 전략전술에 따라 정치판이 하루 아침에 뒤집기를 하기 때문에 이 희귀한 생물의 향방을 예측할 수 없다. YS의 민주산악회 재건 선언으로 ‘후3김시대’가 도래할 조짐을 보이는 지금, 끝이 보이지 않는 ‘3김정치’에 염증을 느끼는 이들은 노회한 정치지도자들의 탐욕과 권위주의에 분통을 터뜨린다.

하지만 어쩌랴. 30년전 40대 기수들이 70대 노인이 돼서도 정치라는 생물을 임의로 조종하면서 권좌를 지키도록 허용한 것은 그 다음 세대의 정치적 무능이 아닌가. 외국물을 먹은 지식인들은 흔히 구미의 정당정치에 견주어 우리의 패거리 정치를 비난한다.

하지만 한국에는 정당이 없으니 소용없는 비난이다. 정당은 정치적 이상과 정책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단이다. 하지만 우리의 정당은 ‘한시적 선거연합’에 불과하다.

정치인들은 이념과 정책과 별로 관계없이 오로지 당선에 유리한 정당의 공천을 받기 위해 모여들고, 그렇게 해서 중요한 선거가 있을 때마다 정치인들의 이합집산과 새로운 ‘선거연합’의 부침이 반복된다. 정당정치가 아닌 ‘선거연합 정치’의 불안정성은 다음 선거에서 집권여당의 이름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고, 극우적 사고방식과 극좌적 전력을 지닌 인물들이 같은 정치결사(結社)에 몸을 담고 있다는 사실에서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3김 이후 세대의 정치적 무능은 새로운 정치결사를 만들지 못한 데서 알 수 있다. 그들은 지금까지 3김이 주도하는 선거연합 중 어느 하나에 가담해 제 한 몸 겨우 추스를 수 있는 정치적 생존의 터전을 마련했을 따름이며, 그나마 안정된 본거지를 마련한 사람이 많지도 않다. 3김의 전횡에 저항해 새로운 선거연합이나 정책정당 결성을 시도했던 젊은 정치인들은 지역주의 광풍에 휘말린 유권자들의 외면으로 예외없이 좌초하고 말았다. 결국 실력이 모자랐다는 이야기다.

모든 국민은 자기 수준에 맞는 정치를 가진다. 이 말은 표현의 자유와 자유선거가 허용된 사회에는 예외없이 적용할 수 있다. 지금의 ‘선거연합 정치’는 6월 민주항쟁 이후 각각 세차례의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 선거 그리고 두 번의 지방자치 선거를 거치면서 만들어졌다. 이 구조가 무너지는 데는 그보다 더 많은 선거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후3김시대’는 큰 문제가 아니다. 종말의 시점이 ‘생물학적으로’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국민회의에 젊은 피를 ‘헌혈’하든 ‘2+α’의 신당에 들어가서 JP를 총재로 모시든, 또는 한나라당의 ‘역정계 개편’에 투신하든, 그도저도 아니면 진보정당 건설에 매진하든 정치를 통해 사회에 봉사하려는 젊은 세대는 긴 호흡으로 생각하고 준비해야 할 것이다. 3김이 만든 선거연합은 그들의 퇴장과 더불어 무너질 것이다. 그 자리에 무엇을 어떻게 세울 것이며, 그걸 위해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

유시민(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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