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175)

  • 입력 1999년 7월 22일 19시 13분


물론 먹는 형편은 취장이 제일 근사했겠지만 거기엔 소내 고양이들의 황제인 검은 털과 흰 털이 섞인 바둑이라는 잘생긴 수컷이 구역을 지키고 있었다. 떠돌이로 돌아다니는 갈색 털에 줄무늬가 있는 바이킹도 취장 싸움에서 황제에게 당해서 한쪽 눈이 멀었다. 검둥이는 새끼 적에 눈 내리는 겨울 밤 사동 일층의 창턱에 올라앉아서 처량하게 울었다고 한다. 고시반 재소자들이 모두 깨어났고 실장이 고양이를 데려다 자기 담요 안에 품고 잤다. 고시반 사람들은 제각기 돌아가며 고양이를 돌보았는데 검둥이라는 이름도 거기서 지어준 이름이었다. 높은 사람 순시가 오면 그들은 검둥이를 공부하는 책상 아래 깊숙이 감추고는 했다. 하여튼 검둥이는 겨울을 나자 대번에 어른 고양이가 되었는데 방을 나간 지 얼마 안되어 배가 불룩해져서 창가에 나타났다. 고시반 애들은 제각기 섭섭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한 것이 마치 시집보낸 딸을 맞이하는 기분이었다.

아이구, 정성으루 키웠더니 어느 난봉꾼의 새끼를 뱄냐?

바람둥이 같은 년, 누가 그 꼴을 해갖구 여기 오라구 그랬어.

아니다 아냐. 누렁이를 낳든 얼룩이를 낳든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하며 제각기 반가워하면서 그들은 소시지며 오징어 다리를 던져 주었다. 생선이 나오는 날이면 빈 사발면 그릇에다 따로 검둥이의 아침을 차려 주기도 했다. 검둥이는 감시탑 아래 지어진 지하 벙커에서 살고 있었다. 벙커의 총기 구멍으로 드나드는 것을 여러 사람이 확인했다. 검둥이는 그 안에서 새끼를 낳았다. 배 아래로 축 늘어진 젖을 출렁거리며 검둥이는 아침마다 사동 일층 앞마당에 와서 울었다. 전과 다른 것은 소시지를 던져 주면 먹지 않고 물어 나르고 나서 다시 돌아오곤 했다. 모두들 새끼를 먹이는 형편을 알아서 서너개를 준비해 두었고 검둥이는 맨 마지막에 던져준 소시지를 마당에 앉아서 천천히 먹어치웠다. 그리고 점심 무렵에 식사당번들이 식통을 싣고 오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검둥이는 잽싸게 사동 앞마당을 가로질러 사람 키 높이의 낮은 차단벽을 뛰어넘고 통로를 건너 맞은편 담장도 넘어 운동장 구석에 있는 재소자 이발부로 찾아갔다. 벌써 배식이 시작된 이발부에는 이른바 왕건이도 많았고 어린 신참 중에 검둥이 밥 당번이 정해져 있어서 비리고 기름진 반찬으로 정성스럽게 점심을 준비했다. 검둥이는 새끼를 많이 낳고서도 근처에는 한 마리도 붙여주지 않았다. 새끼들이 일단 자라고 나면 사납게 물고 뜯고 성깔을 부려서 모두 그네의 구역 밖으로 쫓아냈다. 검둥이는 세 살인가 네 살 되던 무렵에 죽었다. 폐방이 다 되고 나서 저녁 식사도 끝내고 음악방송 시간도 다 지나고 나서 누군가 화장실에 갔던 재소자가 사동 일층 마당에 길게 뻗어 있는 검둥이를 발견했다.

검둥이가 죽었다!

소문이 일 분도 안되어 전 사동에 퍼져나갔고 여러 방마다 수감자들이 창가에 다투어 머리를 내밀고는 마당을 내려다보았다. 여러 사람들이 제각기 검둥아, 검둥아, 하며 부르는 소리로 사동 안이 시끌벅적했다. 놀란 담당들이 호루라기를 불며 돌아다녀야 했다.

취침, 취침. 모두 들어가.

고참들은 철창 앞으로 고개를 내밀고 담당에게 부탁도 했다.

저 거시기 담당님도 다 아시쥬? 검둥이라구 우리 사동 맏딸인디 시방 꼴까닥했는개비네유. 나가서 좀 끌어다가 난롯가에다 불 쬐면 살아날지두 모르는디유.

<글: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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