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칼럼]김정란/아기자기한 지혜의 샘 「책의 향기」

  • 입력 1999년 7월 18일 18시 39분


더위가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덥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질만큼, 우리 사회는 계속 아수라장이다. 씨랜드 참사, 주혜란 임창열 부부의 수뢰사건, 신창원 검거 등 숨쉴 틈도 없이 대형사건들이 터진다. 이런 사회에서 상심(常心)을 지니기란 얼마나 힘든 노릇인가. 마음은 늘 상처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 마음은 상처의 터, 상심(傷心)의 집. 이런 땅에서 진실에 대한 믿음을 가슴 속에 묻고 살아가는 일은 가능한다? 돈과 힘을 쫓아서 덩달아 널을 뛰어야 하나? 아니면 어딘가로 깊이 숨어버려야 하나? 진실은 이제 아무 곳에도 없는 걸까?

이런 상황에서 독서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한가한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현실이 더 소설 같은 터에 책이 다 무어란 말인가. 그래도 애써 보아야 한다. 훗날 정신이란 정신은 다 죽어 폐허가 된다 하더라도, 이삭 한 알갱이라도 남겨야 한다. 그러러면 어떻게든 아이들에게 책을 읽혀야 한다. 사유하는 자만이 세계의 부패를 견뎌낼 수 있기 때문이다.

16일자 독서 페이지는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다. ‘재미있고 야한 책’부터 소개하기 시작한 기사에서는 어떻게든 오락물에 물든 독자들을 독서로 끌어내 보려고 애쓴 흔적이 읽힌다. 그리고 이윽고 끝부분에서 윤대녕과 전경린의 차원높은 에로티시즘에로 끌어가 보려는 정성이 눈에 밟힌다. ‘유머’부분도 그렇다. 쉬엄쉬엄 읽을 만한 개그집을 소개하고, 끝부분에 성석제와 이상운의 책을 덧붙였다. 다만 이상운의 책은 좀더 자세히 언급했으면 좋았을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근래에 발표된 소설 중에서 사유의 힘을 보여준 드문 예로 꼽힐 만한 책이기 때문이다.

‘자녀 눈높이 독서 지도’는 구체적으로 어린이를 독서로 끌어들일 수 있는 실제적인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원론적인 독서 캠페인 수준을 극복하고 있다. ‘청소년 책읽기 5계명’도 청소년 독서지도가 구체적으로 어떤 방향을 따라갸야 하는지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다. 학부모나 일선 교사들에게 좋은 참고가 되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실제로 책과 접하는 아이들의 태도를 알 수 있는 기사를 곁들여졌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남는다.

‘해외출판 통신’의 ‘따르라기의 악마’는 현재 서구사회의 한 정신적 경향을 엿볼 수 있게 해준 좋은 선택이었다. 서구사회에서는 ‘신비의 탐구’가 분명히 어떤 뚜렷한 맥락을 형성하고 있는 중이며, 미국식의 단순한 스릴러물과는 달리, 깊은 철학적 사유를 동반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공포물과 판타지 소설이 붐을 이루고 있는데, 이에 관한 깊은 성찰은 없는 듯하다. 그러나 시 쪽에서는 ‘환상성’이 이미 오래 전부터 심각한 사유를 바탕으로 씌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눈을 씻고 보아도 시는 눈에 띄지 않는다. 90년대에 뜨여지고 있는 시에 나타나는 환상성은 대중물에 나타나고 있는 환상성과 전혀 다른 진지한 맥락을 구성하고 있는데, 대중 동원력에 마음을 쓰는 문학 관리자들은 이 점을 눈여겨 보지 않고 있는 듯하다.

가엾은 시여. 아무리 애써도 네 목소리는 허공에 흩어지는 구나. 그나마 동아일보는 시에게 작은 지면이나마 정기적으로 할애하고 있어서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베스트셀러 소설가에게 시의 선택이 맡겨져 있다는 점을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김정란(시인·상지대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