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세상읽기]한나라당의 對北정책은 무엇인가

  • 입력 1999년 6월 21일 19시 32분


현대 금강호의 첫 출항을 보면서 나는 이런 의문을 제기한 적이 있다.

“또 다시 동해안에 잠수함이 나타나면 금강산 관광객들은 어떻게 될까?” 말이 씨가 된 것인가. 잠수함 침투 정도가 아니라 배가 침몰하고 사람이 무더기로 죽는 교전사태가 터지고 말았으니.

해상에서의 남북한 무력충돌은 분단 50년사에서 흔히 있었던 일이다. 그러나 이 불행한 사건에 대응하는 양측 정부와 우리 국민의 태도는 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것이다.

양측 해군이 교전을 벌이던 바로 그 시각에 수백 명의 남측 관광객들이 금강산 구경을 했고 비료지원선은 하역작업을 순조롭게 진행했다. 경수로와 공단 건설을 위해 북한에 체류중인 2000여명 대한민국 국민의 신변에도 아무 일이 없었다.

판문점 장성급 회담과 남북 농구경기 개최 협의 등 각급 대화채널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북한 관리의 협박성 발언 한 마디에 사재기 사태가 벌어졌던 지난 날과 달리 국지전 성격의 군사충돌이 터졌는데도 생필품 사재기 소동은 일어나지 않았다. 기적같은 일이다.

하지만 모두가 변한 것은 아니다. 자칭 보수세력의 단세포적 조건반사만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들은 금강산 관광 등 남북경협과 비료지원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돈 주고 뺨 맞는’ 사태를 초래한 햇볕정책의 폐기를 요구한다.

한나라당은 그 정체가 불분명한 ‘일부 국민의 여론’을 등에 업고 서해 교전사태가 김대중 정부의 정치적 위기를 타개할 목적으로 남북 정부가 연출한 혐의가 있다는 ‘신북풍 의혹’을 제기하기까지 했다.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말인가? 간판과 총재가 바뀐 것을 제외하면 한나라당은 김영삼 정부 시절의 집권당인 신한국당 그대로이다. 군사적 이데올로기의 대결상태가 지속된 분단 50년 동안 끝없이 불신과 적대감을 키운 두 정부가 제각기 자기중심적 체제통일을 추구하는 한 크고 작은 충돌은 일어날 수밖에 없다.

김영삼 정부가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수십 번씩이나 온탕과 냉탕을 오가느라 대북정책에서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는 것은 널리 인정된 사실이다. 김대중정부도 자기네가 실패한 그 전철을 그대로 되밟으라는 뜻인가.

야당의 딜레마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선거를 통해 권력을 다투는 정당정치는 본질적으로 ‘건설적 야당’의 출현을 어렵게 만든다. 야당이 무언가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건설적 비판과 정책적 제안을 해서 여당이 그것을 수용하면 그것은 야당의 공로가 아니라 정부여당의 치적이 되기 쉽다.

야당은 권력층의 스캔들을 폭로하고 집권여당의 잘못을 물어뜯어야만 자기의 존재를 알릴 수 있다. 정치가 ‘비방의 예술’이라는 비아냥을 받는 것은 정치인들만의 책임이 아니라 게임의 속성이 원래 그런 탓이기도 하다.

그러나 대북정책에 대한 야당의 자세는 그렇게 이해하고 넘어가기에는 도가 지나치다. 한나라당은 나라의 현실과 미래를 나름대로 걱정하는 사람들이 임의적으로 만든 단체가 아니라 막대한 국고보조금을 받는 대한민국의 ‘유일 야당’이다.

그것도 수십년 집권당 경력과 정권 탈환 의지를 가진 거대 야당이다. 햇볕정책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면 한나라당은 공당(公黨)답게 그와는 다른 나름의 대북정책을 제시해야 마땅하다. ‘집권여당이 싫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더 싫다’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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