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公正과세로 가는 길]탈세의 현장-유흥업·소매업

  • 입력 1999년 6월 20일 20시 13분


《조세제도는 국가와 사회의 유지를 위해 필수불가결의 것이고 납세의무는 국민의 기본 의무중 하나이기도 하다.

‘소득있는 곳에 세금있다’ ‘세금은 혈세와 같다’는 등 세금과 관련된 말들은 하나같이 세금이 공평하게 부과되고 징수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납세의 공평성을 둘러싼 계층간의 불만과 불평이 더이상 방치해둘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연금제도확대실시, 의료보험통합 등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4대 사회보험제도가 일부 계층의 저항에 부닥치고 있는 것도 세제의 불공평성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이다.

‘유리지갑’소지자로 불리는 봉급생활자는 자영자에 비해 세금을 많이 낸다고 불평하고 있다. 자영자들 역시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현행 세율과 세제 자체가 불성실 신고를 유도하고 있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국가와 사회의 미래를 위해 현재의 불합리한 세제를 그대로 두어서는 안된다는데는 대다수의 국민이 동의한다.

참여연대와 동아일보는 우리사회의 탈세현장과 현행 세제와 세정의 문제점, 그리고 개선방향을 공동으로 기획, 취재하여 12회에 걸쳐 시리즈로 싣는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A룸살롱. 매장면적 60평에 룸 8개를 갖추고 있다. 이 정도라면 강남지역에서 중급 규모다. 연간 매출액은 18억원 가량.

그러나 주인 Q씨가 지난해 세무서에 신고한 매출액은 5억원. 매출액의 72%를 누락 신고한 셈이다. Q씨가 지난해 세무서에 낸 세금은 부가가치세와 특별소비세 소득세 등 2억1200만원.

18억원을 모두 신고했다면 Q씨가 내야 하는 세금은 8억4200만원. 무려 6억3000만원의 세금을 덜 낸 셈이다. 이는 200만원짜리 월급쟁이(연봉 2400만원, 4인 가족의 가장 기준)가 926년간 월급에서 꼬박꼬박 떼내야 하는 세금의 액수다.

A룸살롱 인근의 B단란주점. 50평의 면적에 종업원은 4명이다. 지난해 매출신고액은 4억원. 그러나 실제로 하루 평균 매상액은 320만원으로 연간 10억원이 넘는다. 이 업소가 매출액을 줄이는 수법으로 탈세한 액수는 지난해 2억5000만원.

A룸살롱과 B단란주점의 경우는 참여연대가 세무사 등을 통해 수집한 실제 케이스다.

어떻게 이처럼 매출액을 60∼70%씩 낮춰 신고하는 게 가능할까. ‘비결’은 현행 세무환경에서 찾을 수 있다. 세무환경 자체가 탈세를 묵인 또는 방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현금으로 받은 술값은 대부분 매출신고에서 제외한다. 현금은 세무조사를 나오더라도 원천적으로 추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A룸살롱이 신고한 매출액 5억원 가운데 현금 매출액으로 신고한 액수는 겨우 5000만원뿐이었다.

다음으로는 술값보다는 접대부의 봉사료를 높게 매기는 수법이 이용됐다. 접대부 봉사료는 업소 매출로 잡히지 않는 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또 허위 신용카드 매출전표를 발급하는 방법도 있다.

이와 같은 탈세는 일부 부도덕한 유흥업주들에게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일반음식점이나 구멍가게 등도 예외는 아니다.

조세연구원이 94년 소비지출 조사를 통해 역추산한 결과 유흥업소 대형음식점 등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자영업자들의 한달 소득은 평균 386만원. 그러나 이들 자영업자들이 신고한 평균 소득액수는 164만원에 불과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식전문점. 종업원이 40명이지만 세무서에는 9명으로 신고돼 있다. 종업원 수가 많으면 그만큼 매출액이 많다는 뜻이고 따라서 매출액 축소를 통한 탈세가 원천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업소가 지난해 신고한 매출액은 5억5000만원. 이 액수로는 종업원 40명의 월급을 주는 데도 빠듯하다. 그러나 실제 매출액은 10억8000만원.

이 업소 역시 현금 결제분을 매출액에서 빼는 방법을 사용했다. 세무서에는 매출액의 90%를 신용카드로 받았다고신고했지만세무사가파악한 신용카드 결제율은 46%에 불과했다.

규모는 작지만 소매점 등 영세 자영업자도 매출액을 줄여 신고하기는 마찬가지. 영세 소매점의 경우 대부분 ‘무자료 덤핑시장’을 통해 싼 값으로 물건을 구입하는 수법으로 매출액을 줄인다.

이밖에 영세업자들은 사업자등록을 하지 않고 업소를 운영하면서 세금을 한푼도 내지 않는 경우도 적지않다. 조세연구원 관계자는 “세제 세정의 미비와 탈세를 범죄로 보지 않는 납세자들의 의식이 겹치면서 자영업자들의 탈세가 만연돼 있다”며 “성실한 납세자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납세환경을 조성해주는 정부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홍성철기자〉sung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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