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칼럼]김정란/「클로즈업」불만

  • 입력 1999년 6월 20일 19시 47분


문화는 인간이 삶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이해를 어떻게 유형화하는지를 보여준다. 따라서 그것은 삶의 내용이며 동시에 형식이다. 문화는 지금 삶의 거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인간의 삶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따라서 문화현상을 분석하고 감시한다는 것은 정치 분석과 감시에 못지않은, 인간의 삶에 구체적인 영향을 끼치는 행위다.

문화는 그것이 아무리 숭고한 목적에 종사하는 것이라고 해도 인간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물적 토대로부터 출발한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 생산과 유통을 담당하는 제도가 잘못돼 있을 때 사회적으로 많은 비용을 무익하게 낭비하게 된다. 15일자 ‘테마 집중진단:자비 공연 전시회’는 겉보기에 그럴듯해 보이는 수많은 연주회와 전시회들이 사실은 얼마나 엄청난 비용을 쓸데없이 낭비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현장을 보고하고, 고질적인 문제점을 짚고, 외국의 경우와 비교하고, 전문가의 견해를 참고했을 뿐만 아니라, 대안까지 제시하는 치밀하고 성의있는 기획이었다.

이 문제는 ‘예술훈련’을 둘러싸고 계급적인 위화감까지 조성하는 우리 사회 특유의 고질적인 병폐다.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물질적 기반이 없는 경우에는 아예 출발조차 할 수 없는 형편인 것이다. 그간 한국의 문화기사들이 거의 언제나 그랬듯이 문화현장을 스크린해 보여주는 대신, 이처럼 문제의 핵심을 파고드는 현장 기자들의 분명한 문제의식과 문제해결 의지가 참신하게 느껴졌다.

같은 날짜의 ‘뉴 밀레니엄 D―200’도 수동적으로 상황을 보고하거나 추상적인 방식으로 20세기를 정리하는 대신 앞으로는 세계화 시대를 맞아 어떻게 인류가 한덩어리가 되어 돌아가게 될 것인지, 따라서 세계의 시민 한사람 한사람이 얼마나 세계의 운명 전체에 구체적으로 연관돼 있는지를 보이겠다는 명백한 기획의도를 보임으로써 이벤트 위주의 밀레니엄 특집 기사들과 분명한 변별성을 보였다. 한 언론사가 그때그때 상황에 대처해나가면서도 이처럼 분명한 비전을확립하고사회현상을해석하는 틀을 제시한다는 것은 아주 바람직한 것처럼 보인다. 앞으로의 기사들도 많이 기다려진다.

16일자 윤대녕 인터뷰 기사는 간결하지만, 작가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돋보이는 인터뷰였다. 작가의 고통을 이해하는 기자의 섬세한 마음이 읽힌다. 게다가 무턱대고 손만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약점을 치고 든 대목도 귀하게 여겨진다. ‘길찾기’라는 윤대녕 특유의 주제를 잘 반영한 사진도 재미있었고 말미에 약력을 덧붙여 순수문학에 문외한일 많은 독자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 것도 적절해 보였다.

그러나 ‘클로즈업’지면에는 불만이 많다. 인사와 동정 사이에 옹색하게 끼여 클로즈업 대상인 인물을 전혀 부각시키지 못하고 있다. 동아일보의 편집은 이따금 기사 내용을 가라앉힐 정도록 갑갑하게 느껴진다. 14일자 베니스 비엔날레 관련 기사를 보자. 왼쪽으로 치우친 답답한 지면, 게다가 수상자인 이불씨의 매력적인 캐릭터를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는 편집. 바로 옆에 컬러로 편집된 ‘에디슨 치킨점 열풍’ 컬러 광고에 잠식당한 흑백의 이불씨 이미지는 별로 전위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현대는 이미지 언어가 문화 헤게모니의 승부를 내는 시대다. 동아일보는 그 점에 별로 민감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김정란<시인·상지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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