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인류모험史]은하 생성의 신비 규명

  • 입력 1999년 6월 15일 20시 05분


우주의 시작과 함께 쏟아져 나온 빛은 초속 18만6000마일의 속도로 별들이 눈송이처럼 흩어져 있는 우주공간을 가로질러 여행해왔다.

억겁의 세월이 흐른 지금 우주 시작의 비밀을 안고 있는 그빛은 이제 작디 작은 광자(光子)가 되어 남아 있다. 이 광자의 흔적은 너무나 희미하기 때문에 지구로부터 375마일 위의 우주공간에 설치돼 있는 허블우주망원경으로 이들을 추적하는 작업은 마치 도쿄에서 반짝이고 있는 반딧불을 뉴욕에서 보려고 애쓰는 것과 같다.

허블 우주망원경은 그 안에 장착된 CCD라는 이름의 강력한 실리콘칩을 이용해 광자 하나하나가 전해주는 고대의 빛을 확대한다. CCD는 이렇게 모아진 정보를 디지털화해 그 이미지를 지구로 쏘아 보낸다. 목적지는 볼티모어 근처 우주망원경과학연구소(STSCI). 허블망원경을 조종하는 인간두뇌격인 수십명의 학자가 이곳에 모여 허블망원경이 모아온 정보를 요리한다.

웬만한 스쿨버스 크기의 우주망원경과 허블망원경으로 찍은 놀라운 사진들이 장식돼 있는 로비를 지나 빙산처럼 새하얗고 길다란 복도를 따라 걸어가다 보면 각각의 컴퓨터 앞에 앉아 마우스를 딸깍거리거나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과학자들의 모습이 나타난다. 마젤란이나 콜럼버스 같은 옛 모험가들이 전혀 움직이지 않은 채 광활한 시공간을 여행하고 아무런 위험도 없이 스릴을 느끼는 이들을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물론 천문학은 옛날에도 몸보다 머리를 더 많이 움직이는 분야였다. 그러나 기술의 발달로 이제 우리는 몸으로는 결코 갈 수 없는 먼 곳까지 머리로 여행할 수 있게 되었다. 2007년경에 발사될 예정인 차세대 우주망원경은 차치하고라도 허블망원경 하나만으로도 학자들은 안락의자에 편히 앉은 채 우주의 시작점을 향해 어쩌면 인류 역사상 가장 길고 가장 야심적인 여행을 하고 있다.

수수한 넥타이에 니트 조끼를 입은 남자가 심전도 그래프처럼 생긴 것을 들고 지나간다. 그가 들고 있는 것은 천체에서 나오는 빛의 분광 그래프다. 천문학자들에게 있어 빛은 오래된 난파선에서 건져올린 유물상자와 같다. 빛의 스펙트럼을 통해 학자들은 그 빛의 출발지인 천체까지의 거리, 그것의 온도, 화학적 구성 등을 알아낼 수 있다.

이제 우주망원경 과학연구소 실무책임자 해리 퍼거슨의 방에 도착했다. 자료와 일정표 등이 빽빽하게 들어찬 그의 사무실을 보면 이곳에서 일하는 학자들이 느끼는 심리적 압박감이 전해진다.

퍼거슨이 가장 최근의 관측 일정을 보여준다. 허블망원경으로 10일 동안 남쪽 하늘에서 지금까지 조사해보지 못했던 먼 곳의 사진을 찍는 계획이다. 관측을 위해 허블의 움직임을 조정해주는 작업은 대단히 섬세함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단 하루의 관측을 위해 꼬박 한달 동안 계획을 짜고 컴퓨터 프로그램을 작성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번 관측에서는 세 대의 카메라가 각각 다른 주파수대에서 촬영하게 된다. 또 망원경이 태양열에 의해 너무 달궈지지 않도록 회전시켜 주는 것도 잊어서는 안된다.

우주망원경 과학연구소는 이렇게 얻어진 사진을 정리해 대중에게 공개한다. 자료를 요청하는 사람에게는 자료를 보내주기도 한다. 과학자들뿐만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전자우편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어린아이라도 자료요청이 가능하다.

연구소 입장에서 보면 이같은 자료의 대중화는 또 하나의 심리적 압박요인이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선명하고 굉장한 사진을 만들어내는 작업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원래 허블망원경이 전송하는 이미지들은 기껏해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혼돈’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모습을 하고 있다. 기계의 작동이 남긴 흔적과 우주선(線)의 흔적들이 사진을 추상화처럼 만들어놓기 때문이다. 이 혼란스러운 이미지 중에서 가장 촬영이 잘 된 부분을 골라내 과학적인 정확성을 갖춘 사진으로 정리하는 작업에는 수학적 머리와 외과의사적인 솜씨가 필요하다. 이렇게 얻어진 사진은 천체가 발산하는 빛의 출발 시점, 즉 수억년이나 수십억년 전의 우주의 모습을 알려주는 소중한 자료가 된다. 우주망원경 과학연구소에서 사진 정리작업을 담당하고 있는 마크 디킨슨은 이를 가리켜 ‘초기 은하들의 쥐라기 공원’이라고 표현했다.

▽필자:브루스 더피〓소설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