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영화]「이재수의 난」主役 이정재

  • 입력 1999년 6월 10일 19시 27분


“5개월여의 촬영기간중 하루도 빠짐없이 잠을 설쳤어요. 1백년전 민란의 우두머리였던 이재수를 만나느라….”

26일 개봉되는 영화 ‘이재수의 난’(박광수감독)에서 장두(狀頭·민란의 우두머리) 이재수 역을 맡은 이정재(28).

SBS ‘모래시계’이후 영화 ‘젊은 남자’ ‘태양은 없다’ 등으로 흔들리는 젊은 청춘을 대변해온 그는 파격적인 역할 전환의 부담감을 솔직하게 고백했다.

“만들어진 이미지로 몇년 더 젊게 살기 보다는 이 작품을 통해 연기의 ‘그릇’을 넓히고 싶었다.”

그를 끌어당긴 건 이재수의 인물됨됨이. “이재수는 천민 출신으로 장두가 되는 인물로 격동기의 바람을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아간 매력적인 인물”이라고 털어놓았다.

이재수와의 만남이 그토록 힘겨웠을까. “예상했지만 데뷔이후 가장 힘들었습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이전 작품들에서는 내 모습 어딘가에 있는 것을 찾아내기만 하면 됐죠. 그러나 이재수는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면서도 대사는 극도로 제한된 가운데 표정 연기가 필요한 인물이어서 쉽지 않았습니다.”

그는 원작인 현기영의 소설 ‘변방에 우짖는 새’를 세차례 읽었단다. 같은 제목의 연극에서 이재수 역을 맡았던 강신일(영화에서는 참모 역으로 출연)을 ‘연기스승’으로 모셨다.

정해진 개런티를 포기하는 대신 흥행성적에 따라 출연료를 받겠다고 일찌감치 선언했고, 가슴에 ‘혁(革)’자를 문신으로 새기는 장면에서는 실제로 칼로 가슴을 찔러 피를 내서 주위 사람들을 놀래키기도 했다.

촬영현장에서 그의 별명은 ‘퀵서비스맨’. 장두가 되기전 통인(通引·조선조 관청 소속의 심부름꾼)으로 쉴 새없이 제주도의 오름을 뛰어다니는 장면을 촬영하느라 세차례나 기절하면서 얻은 것. 평발이어서 공익근무요원으로 군복무한 그에게는 ‘육체와의 전쟁’이었던 셈이다.

이정재의 연기에 대해 평론가들은 합격점을 줬다. 그러나 몇몇 장면에서 사실감이 떨어진다는 평가도 따른다.

박감독의 까다로운 주문을 감안하면 연기자로서의 가능성을 넓혔다는게 중론이다. 하지만 그의 자평은 냉정하다.

“‘모래시계’로 연기력에 비해 너무 일찍 유명세를 탔어요. 삶의 체험이 진득하게 배어 있어야 가짜가 아닌 ‘진짜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데…. 이번 작품을 통해 스물여덟이라는 나이로는 메울 수 없는 부족함을 많이 느꼈습니다.”

이정재는 “‘우나기’의 야쿠쇼 코지처럼 작품 자체가 배우 속에 녹아있는 연기자가 되고 싶다”며 “나는 아직도 배울게 많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 이번 영화출연의 가장 큰 소득”이라고 말했다.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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