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칼럼]차병직/「옷」말고 검찰독립도 짚었어야

  • 입력 1999년 6월 6일 19시 25분


이런 것까지 골라내는 행위가 결코 트리비얼리즘만은 아니다. 사소한 것은 소홀히 취급될 수도 있는가, 아니면 사소한 것까지 철저히 정확성을 유지해야 하는가. 선택의 문제이다. 지엽적인 부분에 착오가 있더라도 전체적으로 그르침이 없으면 진실인가, 아니면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엄격한 의미에서 옳지 않으면 허위인가. 진실성에 관한 문제이다.

5월 29일자 1면 한가운데 친숙한 그림이 게재됐다. 사진 하단에 ‘최후의 만찬 22년 만의 공개 현장’이란 제목 아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명작 최후의 만찬이 복원돼 22년 만에 공개된 27일…보도진들이 몰려들었다’는 설명이 있다. 이 기사를 읽은 독자는 누구나 ‘최후의 만찬’이 22년 동안 공개되지 않고 있었다고 믿을 수밖에 없다. “1494년부터 4년에 걸쳐 완성된 이 명화는 28일부터 일반인에게 공개됐다”고 이어지는 해설까지 덧붙이면 영락없이 그렇다.

이 그림은 22년간 복원작업을 하는 동안에도 제한적이나마 계속 일반인에게 공개됐다. 물론 지금처럼 새로이 단장된 상태로는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설명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보도 대상의 핵심적 사실은 ‘공개’가 아니라 ‘복원작업의 완성’이다. 독자들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눈에 띄는’ 제목보다는 다소 긴장감이 떨어지더라도 보다 ‘사실에 가까운’ 제목을 달아야 한다. 같은 내용을 다룬 기사지만 자매지 ‘뉴스플러스’ 187호 58면에는 ‘최후의 만찬 22년 손질 끝 햇빛’이라고 작은 제목을 달았다. 비교가 된다.

신문을 읽은 독자 중 복원작업 동안 밀라노를 여행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해설의 보이지 않는 과장을 안다. 그러나 으레 그려러니 하고 넘어간다.

그것이 쌓이면 신문의 신뢰도는 점점 허물어진다. 그렇지 않고 작은 부분까지 집요하게 엄밀성을 추구하면, 그리하여 독자들이 신문의 그런 고집을 눈치챌 때쯤 되면, 신문은 놀라울 정도로 힘을 갖게 될 것이다.

지난 한 주일은 계속 ‘고급옷 로비 사건’ 보도가 주된 관심의 대상이었다. 대통령의 귀국과 6·3재선거 결과도 모두 그 사건과 관련돼 보도됐다. 모든 언론이 다투어 취재경쟁을 할 때 뒤지지 않게 읽을거리를 마련하는 것은 기본이다. 그런 점에서 동아일보의 보도는 평균점 이상을 받을 만했다.

모든 신문이 천편일률적인 보도를 할 경우 어느 신문을 보나 독자 입장에서는 다를 바가 없다. 일주일 이상 계속되는 사건보도에서는 차별성을 가질 의도적 기획이 있으면 돋보인다. 김태정 법무부장관의 퇴진 문제가 다시 쟁점이 됐다. 하지만 퇴진 당위성의 근거를 왜 ‘옷 사건’에서만 찾으려 하는가. 검찰권 행사의 정치적 독립성은 근년에 이르러 중요한 화두가 됐다. 검찰총장을 임기제로 하고, 위헌의 곡절을 겪고 말았지만 퇴직 후 3년간 공직 취임을 제한하는 고육책을 동원해 검찰청법을 개정했다. 대통령이 검찰총장 임기를 남겨두고 있던 김태정씨를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한 것은 그 자체로 검찰청법을 무시하고 송두리째 뒤엎는 행위란 점을 부각시켜야 했다. 법무부장관 유임을 둘러싼 설문 조사의 허실을 지적하는 것은 빠뜨릴 수 없는 부분이지만, 의욕적으로 자체 설문 조사를 했더라면 강력한 반론을 제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차병직<변호사·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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