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이인길/관치 만능, 그 위험성

  • 입력 1999년 4월 14일 19시 50분


정부 스스론 ‘본업’에 충실한다고 당당해 할진 모르나 우리가 보기엔 정반대되는 두가지 풍경.

그 첫번째 난센스는 금융감독원이 8일 현대전자의 주가조작 혐의를 확인했다고 발표한 다음날의 일이다.

외국자본 유치를 위해 동남아에 나가 있던 현대그룹 총수 정몽헌(鄭夢憲)회장은 금감원 발표 내용에 놀란 나머지 일정을 단축하고 급거 귀국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금감위로 달려간 그는 이헌재(李憲宰)금감위원장을 만나 고개를 숙여 사과하고 구조조정을 차질없이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금감원측은 표적조사가 아니라고 펄펄 뛰고 있으나 앞뒤가 맞지 않다. 지난해 증권거래소가 금감원에 통보한 시세조종건은 모두 1백13건. 통보 6개월이 지나서야 요란하게 발표한 것도 그렇고 그 많은 사례 중 현대건만 공개한 것은 ‘특별한’ 배경이 아니고선 설명이 안된다.

아무튼 이 일이 있은 후 현대의 자세는 1백80도 달라졌고 교착상태에 있던 반도체 빅딜도 급류를 타고 있다. 관치(官治)의 권능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두번째는 재정경제부의 경기부양에 대한 과잉의욕이다. 경제정책이란 기본적으로 선택의 게임이므로 정책의 주조를 어디에 둘 것이냐는 어차피 정부가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정책자세다. 13일 재경부가 주관한 ‘부동산시장 동향 점검회의’는 일부지역에서 투기우려가 있던 차에 열린 것으로 시기적으론 적절한 대응이었다고 본다.그런데 의욕이 지나쳤다. 부동산 경기가 전체적으론 과열이 아니라고 진단한 것까진 있을 수 있다. 정부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내친 김에 ‘하반기엔 집값이 상승할 것’이란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다.

정부의 의도는 분명하다. ‘하반기엔 가격이 더 오를 것이므로 국민 여러분 빨리 시장으로 오시오’하는 메시지에 다름아니다. 과거에 정부가 앞장서서 경제를 이끌어갈 때 많이 보았던 ‘선동적인’ 레퍼토리다. 정책의지와 국민오도를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 열풍에 정신을 빼앗기도록 무모한 도박을 조장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어찌된 셈인지 경제가 굴러가야 할 방향과 거꾸로 가는 시대착오적인 사례들이 요즘 점점 많아지고 있다. 금융부문의 구조개혁도 그 끝이 어딜까를 생각해보면 가슴이 턱턱 막혀온다.

은행의 부실을 탕감해주기 위해 정부가 64조원이란 공적자금을 쏟아부은 결과 대형 시중은행은 모두 국책은행으로 바뀌었다. 조흥은행 한빛은행이 그렇고 제일은행 서울은행의 최대주주도 정부가 됐다. 행장선임은 물론이고 경영전반을 정부가 좌지우지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다. 사채양성화를 비롯한 과거의 경험으로 볼 때 어마어마한 돈을 투입한 결과가 잘 될 것이란 보장은 아무데도 없다.

금융기관의 계좌를 뒤지는 문제도 그렇다. 정부는 부정부패의 사정이란 사회정의의 측면과 ‘법대로’를 강조하지만 사안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뇌물사범을 끝까지 추적해 탈법을 응징하는 것은 백번 옳다.적법한 계좌추적에 이의가 있을 수도 없다.

그러나 옳은 것은 옳은 것이고 믿음이 생명인 금융에 대해 불신이 커지고 예금이 위축되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금액이 많고 적고 간에 금융비밀이 다 노출된다고 생각하게 되면 그 결과는 끔찍하다. 외국금융기관에 돈이 몰려가고 과소비와 자본도피같은 망국적 사태가 올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시장(市場)을 세심하게 배려하지 않고 효율적이고 공정한 틀이 아닌 관치가 횡행하는 곳에서 자본주의는 공동묘지로 갈 수밖에 없다.

이인길<경제부장>kung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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