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을 통해 만난 이성친구와 ‘탐색전’을 벌인 이들은 분위기가 무르익자 상대방이 알려준 휴대전화 번호로 서로 연락해 ‘접선할’ 장소와 시간을 정한다.
미국 할리우드 영화 ‘타이타닉’의 국내 흥행기록을 깨뜨린 국산 첩보영화 ‘쉬리’의 한 장면이 아니다. 요즘 청소년들 사이에 큰 인기인 ‘온라인 미팅’의 풍경이다. 교복차림으로 빵집에서 만나 미팅을 즐기던 ‘386세대(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30대를 지칭)’와는 확연하게 다른 교제문화가 유행하고 있는 것이다.
동네 또는 학교 등에 한정됐던 교제범위가 광활한 사이버공간으로 확대되면서 자신에게 꼭맞는 친구를 만날 확률이 크게 높아졌다. 성격 취미 신장 혈액형 등 여러가지 희망사항을 입력해두면 여기에 꼭맞는 대상이 나타났을 때 자동으로 E메일이 도착하는 편리한 세상이 된 것이다.
인터넷에 친숙한 청소년을 의미하는 ‘인터넷 키드(Internet Kid)’. 이들에게 있어 인터넷은 기성세대가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한 게임도구만은 아니다. 물론 책상에 앉아 공부하기보다는 밖에 나가 뛰어놀기를 좋아했던 어른들의 어린시절처럼 ‘실감나고 재미있는’ 게임에 몰두하지만 이들에게 게임이 인터넷의 전부는 아니다.
친구사귀기 숙제 펜팔 사이버과외 미팅 고민상담 사이버신문읽기 음악감상 TV시청 어학공부 만화책읽기 백과사전찾기…. 청소년들의 인터넷 활용분야는 광범위하다.
인터넷 웹사이트와 PC통신에 개설된 게시판과 대화방은 젊은 네티즌들의 활기찬 목소리들로 넘쳐나고 있으며 다양한 주제의 동호회와 소모임 활동도 활발하다. 굳이 다리품을 팔아가며 찾아다니지 않아도 사이버 공간에서 하루종일 마음껏 세상을 만끽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인터넷 PC방을 운영하는 김범수사장(34)은 얼마전 한 교사가 학생들을 단체로 인솔해온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컴퓨터 특별활동시간을 이용해 인터넷PC방을 찾아온 것도 이례적인 일이었지만 가르쳐야 할 교사가 거꾸로 학생들에게 배우고 있었던 것.
김사장은 “인터넷을 배우려고 친구따라 인터넷PC방을 찾는 학생수도 적지 않다”면서 “당구장 만화방 노래방 등을 찾던 청소년들이 인터넷PC방으로 몰려들고 있다”고 말했다.
‘좋은 아버지가 되려는 사람들의 모임’의 나원형(羅原亨·39·무역업)회장은 ‘청소년에게 있어 인터넷은 실(失)보다는 득(得)이 더 많은 존재’라고 확신한다. “청소년들이 음란물을 쉽게 접하거나 게임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부작용이 없진 않지만 인터넷을 마음대로 활용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든든합니다. 이들이 성인이 될 무렵이면 인터넷없는 세상을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회장은 한걸음 더 나아가 ‘부모도 인터넷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이들의 경우 인터넷을 모르면 지금도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할 정도인데 앞으로 사회 전반에 보편화될 인터넷을 부모가 이해하지 못한다면 문화적 이질감으로 인한 자녀와의 대화 단절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 나씨의 주장이다.
20세기 산업혁명의 시대가 서서히 막을 내리고 디지털혁명이 ‘소리없이’ 진행되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 각국은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청소년에 대한 정보화교육을 강화하는 추세. 미래의 한국경제를 책임질 우리의 인터넷키드들이 지금 제대로 된 정보화 교육을 받으면서 자라나고 있는지 점검해 볼 때다.
“지금 우리 학생들이 정보화 교육에서 처지면 영국의 앞날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토니 블레어 영국총리)
〈성동기기자〉espr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