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미결수와 私服

  • 입력 1999년 2월 19일 19시 20분


유무죄가 확정되지 않은 미결수에게 제한적으로나마 사복(私服)을 입히려는 법무부 방침은 인권보호 차원에서 진일보한 것이다. 법률상 무죄추정의 원칙과 국제인권규약 정신에 맞는 조치라고 할 수 있다. 기결수와 미결수의 차이조차 잘 모르는 일반인이 적지 않은 현상도 따지고 보면 그들의 법적 신분의 차이를 무시해온 교정당국의 잘못된 행형(行刑)관행과 무관하지 않다. 미결수의 사복착용문제는 재야법조계와 인권단체 등이 꾸준히 제기해온 사안이었다.

그러나 법무부의 계획은 미결수 인권보호의 출발점에 불과하다. 미결수들에게 최소한의 생활조건조차 갖춰 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임을 고려한다면 보다 획기적 대책과 관심이 필요하다. 미결수는 전체 수감자의 40%를 넘는다. 따라서 그들의 인권문제는 가볍게 볼 성질이 아니다. 법무부는 우선 법정 등 수용시설 밖으로 나갈 때만 사복을 입힐 방침이나 시설 내부에서도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복보관과 세탁, 질서유지, 예산문제 등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겠으나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옳다.

미결수에게 사복착용문제가 중요한 것은 수인(囚人)번호가 찍힌 수의(囚衣)가 교도관과 재판관계자, 일반인에게 주는 편견 때문이다. 수의를 입고 재판을 받을 경우 판검사와 심지어 변호사에게까지 ‘유죄’심증을 굳혀줄 우려가 있다. 이는 민주국가 사법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구치소 안팎에서의 보안과 질서, 계호문제 등을 깨지 않는 범위 내에서 미결수의 권리는 최대한 보장돼야 마땅하다.

수용시설도 큰 문제다. 우리나라는 기결수를 수용하는 교도소내에 미결수 구치시설이 함께 있는 경우가 많다. 그 경우 법적 신분의 차이가 반영되지 않을 우려가 있다. 기결수는 유죄로 확정된 사람인데 비해 미결수는 유무죄가 아직 미정이란 점에서 그에 합당한 처우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 미결수에 걸맞은 인권을 향유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독거(獨居)수용은 물론 의류 침구류와 운동 오락시설 등도 구비해줘야 한다. 구치시설은 교도소와 독립해 설치하는 것이 선진국의 추세다. 막대한 예산이 뒤따르는 문제지만 미결수의 인권문제를 더이상 방치할 수 없다.

선진국들은 미결수 수용시설을 법원과 검찰청 가까운 곳에 설치하는 것이 보통이다. 수사와 재판을 위한 신속한 호송에 유리하고 특히 미결수의 법적 신분에 따른 처우를 위해서다. 일본은 법원 검찰청 인근에 1백10여개의 구치지소를 별도로 설치해 놓았다. 검찰청 소재지에도 구치시설이 없어 경찰서유치장 신세를 지는 경우가 많은 우리와 대조적이다. 미결수의 인권보호와 전문적 관리를 위해 시도해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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