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YS 회견 해프닝

  • 입력 1999년 2월 9일 19시 26분


김영삼(金泳三·YS)전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발표했다가 몇 시간 만에 연기했다. 측근을 통해 회견계획을 발표한 것도, 참모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회견을 연기한 것도 모두 전격적이다. 이 소동에 접한 국민은 두번이나 어리둥절해야 했다. 김전대통령은 대통령 재임중에도 중요정책을 즉흥적으로 결정했다가 갑자기 뒤집어 ‘깜짝쇼’라는 비판을 받곤 했다. 그런 터에 퇴임후에도 또 깜짝쇼를 벌이려 한 것 같아 씁쓸하다. 전직대통령답지 않은 어처구니 없는 해프닝이었다.

김전대통령으로서는 지금의 경제청문회와 자신을 압박해 오는 듯한 정치전개에 모멸감을 느꼈거나 격앙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김전대통령이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부른 국정최고책임자였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 그가 청문회에 출석해야 할 시간에 등산을 떠난 것도, 하산 길에 불쑥 회견계획을 발표토록 한 것도 적절치 않은 행동이었다. 특히 전 한보그룹 총회장 정태수(鄭泰守)씨가 청문회에 제출할 답변서 내용도 모르는 상태에서 같은 날 먼저 기자회견을 하려 한 것은 정치쇼의 냄새마저 풍기는 처사였다.

김전대통령이 회견에서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정태수씨가 주었다는 대선자금을 받은 일이 없다고 부인하고 여권을 향해 뭔가 경고할 것으로 관측됐었다. 적어도 IMF 구제금융을 받게 만든 정책선택의 잘못을 인정하고 국민에게 겸허하게 사죄하려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수 국민이 수긍할만한 내용과 시점이었다면 참모들이 회견을 일제히 만류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김전대통령의 판단은 국민의 일반적 정서와는 거리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본란이 지적했듯이 김전대통령은 한보자금 1백50억원 수수 여부와 환란(換亂)이 초래되기까지의 정책결정과정 등을 어떤 형태로든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해야 한다. 정태수씨가 제출한 답변서에 대해서도 소명이 필요하다. 아울러 IMF 관리체제로 고통을 받고 있는 국민에게 다시 한번 진심어린 위로와 사과를 하는 것이 온당하다.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일단 열리고 있으니 청문회에 출석해 증언하는 것이 옳고 국민을 납득시키는 데도 효과적일 것이다.

요즘 김전대통령이 어떤 심경일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재임중의 경제정책 실패가 통한스럽고 여권의 정치운영 방식이 분통터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전직대통령으로서, 그것도 환란 당시의 대통령으로서 의연하고 사려깊게 처신해야 옳다. 이번 해프닝처럼 자기중심적인 행동은 국민의 반감을 키울 뿐이다. 전직대통령도 고도의 품격이 요구되고 사회적 책임이 따르는 공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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