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훈/무분별 「카드사기」고소

  • 입력 1999년 2월 5일 19시 10분


경제 한파가 몰아친 이후 일선 경찰서 조사계는 신용카드 고소사건으로 ‘북새통’이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지난해 8월부터 올 1월까지 강남 서초 송파 동부 등 서울지역 4개 경찰서에 우편으로 접수된 고소 사건을 분석한 결과 전체의 24∼48%가 신용카드 회사들이 연체자를 사기 혐의로 고소한 ‘카드사기’사건이었다.

송파경찰서는 2백38건 중 48.2%인 1백15건, 강남경찰서는 4백72건 중 29.2%인 1백38건이 카드사기 사건이었고 동부경찰서와 서초 경찰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카드회사가 연체자를 고소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대금을 받는 데 경찰의 힘을 빌리는 것이 가장 간편하기 때문이다. 일단 사기 사건으로 접수되면 경찰은 연체자를 불러 수사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겁’을 먹은 가입자들이 ‘신속’하게 카드대금을 갚기 때문이다.

실직자 급증 등으로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카드 사용대금을 한두 차례 못낸 사람까지 사기범으로 몰아붙인다면 문제다. 더구나 형법상 사기죄가 성립하려면 △신용카드를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사용한 흔적이 있거나 △한번도 대금을 결제한 일이 없이 거액을 사용하고 갚지 않은 경우 등 고의성이 입증돼야 하는데 대부분이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카드사기 고소사건은 무혐의처리되고 있다.

결국 카드회사들은 경찰을 ‘해결사’로 이용하는 셈이다.

개인의 신용을 따져 카드를 발급해줬다면 돈을 받지 못한 책임도 카드회사의 몫이다. 고객을 사기범으로 몰아 돈을 받아내겠다는 생각은 정도(正道)가 아니다.

이훈<사회부>dream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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