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며 생각하며]윤호진/꿈이 현실된 뮤지컬 「명성황후」

입력 1999-02-04 19:28수정 2009-09-24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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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명성황후’에 매달린 지 벌써 9년째. 30년 연극계 생활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세월이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한 작품에 10년 가까운 세월을 쏟아붓게 만드는 것일까 반문해본다. 또 긴 여정과 같은 작업은 언제쯤 끝날까 생각해 본다.

처음 목표부터 황당무계할 정도로 거창했다. 생애 첫 뮤지컬의 세계 시장 진출이었으니까…. 현실적으로 불가능할지라도 꿈이라도 꾸어보자, 막말로 꿈꾸는 게 돈 들어! 이런 배짱에서 출발했다. 되짚어 볼수록 아찔한 순간이 너무 많았다. 지금은 그 고통스럽고 절망적인 순간들이 즐거운 추억과 무용담으로 변해 어렵고 힘들 때마다 내게 새로운 꿈과 위안을 준다.

4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명성황후 시해 1백주기인 95년 10월에 첫 막을 올리기 위해 준비했지만 제작비가 없어 10월 공연을 포기하고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12월31일 첫 공연의 막이 올랐다. 아차했으면 1백1주기가 되는 해에 막이 오를 뻔했다. 연극계 주변에서는 백이면 백, 모두 ‘명성황후’ 성공에는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제작에 참여한 스태프, 배우들만은 성공을 확신하고 있었다. 6개월간 혹독한 연습과정을 겪으면서 ‘우리가 감동하면 틀림없이 관객들도 감동할 것이다’는 신념이 생긴 것이다. 실제로 관객의 반응은 예상보다 더 엄청났다.

관객들의 열화같은 호응에 힘을 얻어 황당무계하다는 목표, 세계시장 진출이란 꿈을 현실화하기 위해 운영위원들 그리고 주요 스태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계 최고수준의 뮤지컬과 비교하면서 모자라는 부분을 점검해 수정작업에 들어갔고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뛰기 시작했다. 기적적으로 미국 뉴욕 링컨센터의 까다로운 대관심사를 통과했고 정부와 기업의 지원만 있다면 꿈이 현실로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

그러나 피나는 노력은 수없이 절망으로 다가왔고 조심스럽게 포기론까지 나오기에 이르렀다. 결국 운영위원들의 집을 저당잡히고 모든 참여자들의 헌신적인 무료 출연동의에 힘을 얻어 ‘돈없으면 뗏목이라도 타고 가자’던 뉴욕행이 실현됐다.

97년 8월15일 뉴욕. 첫 공연의 무대 커튼콜은 울음바다였다. 배우들은 무대 위에서 울고 나와 운영위원들은 객석에 주저앉고 말았다. ‘아! 드디어 우리는 해냈다’는 벅찬 감격. 비싼 경비탓에 결국 적자를 봤지만 우리가 얻은 소득은 컸다. 밀려드는 관객과 뉴욕 언론의 극찬에 힘얻어 링컨 센터측은 이듬해 한달의 공연기간을 약속해주었고 우리는 다시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 98년 공연을 위해 또 다시 미비점을 점검하고 보다 나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신이 나서 작업에 몰두했다. 전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아냈으나 재정 적자는 면할 길이 없었다.

올해 영국 런던과 일본에서 공연하기에 앞서 3월 서울 공연을 위해 작품을 손질하고 있다. 내 경험에 의하면 어떤 작품도 재공연을 준비하면 의욕과 열정이 식는다.

그러나 뮤지컬 ‘명성황후’는 이상하리만큼 손을 대면 댈수록 재미가 있다. 이것이 바로 9년째 작업을 계속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인 모양이다. 우리 제작진은 모두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할지라도 뮤지컬 ‘명성황후’는 앞으로도 세계 관객에게 계속해서 사랑받는 작품으로 남길 기대하면서 오늘도 우린 완벽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신나게 작업을 하고 있다.

윤호진(연출가·단국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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