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용정/세계화의 덫

  • 입력 1999년 2월 2일 19시 28분


해마다 이맘때면 스위스 남동쪽 작은 산골마을 다보스는 오늘의 세계를 이끌고 인류의 미래를 생각하는 각국 지도자들과 세계적 지성들로 크게 붐빈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달 28일 개막돼 어제 막을 내린 제29차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에는 40여명의 국가원수급 지도자를 비롯해 3백여명의 각료급 정치인, 세계적 기업인, 문화예술인, 언론인 등 2천여명이 회동했다.

▼신자유주의 향한 경고

이번 포럼의 주제는 ‘책임 있는 세계화, 세계화의 충격관리’였지만 관심을 끈 것은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적 경제질서에 제동을 거는 ‘세계화의 사회적 책임론’이었다. 클라우스 슈밥 세계경제포럼 회장은 세계화가 거역할 수 없는 큰 흐름이긴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이며 이에 대한 본격적인 담론을 시작할 때라고 말했다. 헤어초크 독일대통령도 자본자유화와 시장경제의 기치를 내건 세계화가 제삼세계와의 빈부격차 확대, 불평등 확산이라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며 새로운 경제 및 금융질서를 모색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것은 일찍이 갤브레이스가 우려했던, 투기성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취약성에 대한 재인식이자 국가통제를 벗어난 헤지펀드의 국제금융질서 교란의 위험성에 대한 뒤늦은 경고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세계화를 경제 또는 무역 금융만의 문제로 국한시킬 수는 없다. 문명사적 새 도전이요 새로운 실체로서 지구촌 차원의 세계화를 어떻게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이냐는 우리 모두의 관심사다. 무역과 금융 이외에도 산업 환경 도시화 범죄 쓰레기 핵 초국경 무국적화 등 일련의 문제들은 지구촌 전체를 단위로 하여 풀어가야 할 인류공통의 과제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중심에 서는 것은 역시 경제의 세계화다. 그것은 단순논리로는 국가간 경제적 상호의존관계의 강화와 각종 거래의 자유화를 의미하지만 지금의 상황전개는 경제의 금융화와 미국 시스템의 글로벌 스탠더드화로 요약될 수 있다. 미국은 전세계에 자유화, 규제완화, 시장경제를 전파하면서 명실상부한 글로벌 이코노미를 이룩했다. 그것은 다른 측면에서는 미국이 주도하는 전지구적 단일시장의 구축과 세계화를 통한 미국의 패권유지를 겨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금융의 세계화를 통해 외환위기를 겪고 있는 국가들을 미국식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주변부로 완벽하게 편입시켰다. 그리고 자신들의 절대적 영향력아래에있는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IBRD) 등의 국제금융기구로 하여금 그들 나라의 경제주권을 대신 행사토록 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 위에 군림하는 것은 초국적자본과다국적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국제금융자본이다. 세계화시대의 국제금융자본은 더이상 이념과 국경의 장벽이 없다. 오직 이윤만을 좇아 환투기를 일삼으며 국제금융질서를 교란하고 있다.

경제 세계화의 충격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것은 아시아와 러시아에 이어 남미로까지 확산된 경제위기다. 이 과정에서 IMF는 미국식 금융자본주의의 모델을 이식하는 데 주력했으며 미국은 세계 각지의 경제위기와 고통을 즐겼다는 것이 조지 소로스의 솔직한 지적이기도 하다. 재작년 동아시아 위기가 확산되자 미국의 월가(街)는 ‘미국 자본주의의 승리’를 외쳤으며 신경제 신화의 단꿈에 젖은 보수계층은 샴페인을 터뜨리며 21세기에도 지속될 ‘팍스 아메리카나’를 자축했던 것이다.

▼미국식 세계화의 한계

여기에서 미국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스스로의 한계를 나타냈다. 그리고 자본 자유와 시장경쟁 등을 내세우며 20년 이상세계를지배해온약육강식의미국식자본주의는유럽의 사회적 시장자본주의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새해 벽두 출범한 유럽연합의 단일통화 유로(EURO)는 팍스 아메리카나를 향해 쏘아올린 공식 도전의 신호탄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시하라 신타로가 단호하게 내뱉은 ‘다시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은 미국의 ‘일본 때리기’에 대한 대반격의 결연한 의지를 함축하고 있다. 그것은 제3차 경제세계대전의 전주곡일 수도 있고 라비바트라가 예언한 세계대공황의 현실화 가능성일 수도 있다. 그것을 막는 것은 오로지 미국의 현명한 결단에 달렸다.

김용정<논설위원>yjeong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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