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국내 첫 바둑誌 1934년 창간호 발견

  • 입력 1999년 1월 24일 19시 03분


“評曰大抵 圍棋法方이 用兵之術과 약同하니 兩陣이 對圓하야 勝負를 決할 제에…”

(평왈대저 위기법방이 용병지술과 약동하니 양진이 대원하야 승부를 결할 제에:대개 바둑두는 법이 병사를 쓰는 법과 비슷하니 서로 대치해 승부를 다툴 때에…)

한국 최초의 바둑 월간지인 신정기보(新訂棋譜)제1호에 실린 옛글 투의 머릿말이다. 지금부터 65년 전, 1934년에 나왔으니 그럴 법도 하다. 한국바둑사에 획을 그은 진귀한 이 책이 최근 서울 종로구 인사동 고서점가에서 발견돼 기가의 관심을 끌고 있다.

육당(六堂)최남선 선생의 문집 속에 섞여있다 고서점가에 흘러나왔다는 정가 50전짜리 이 책을 40만원에 산 프로기사 문용직4단은 “한국전래의 순장바둑 연구에 좋은 재료가 될 것”이라며 기뻐했다. 바둑서적 수집가인 강명구씨(한국통신 창원전화국 공익서비스부장·아마4단)도 “시중에서 구할 수 없었던 희귀한 책이 발견됐다.”고 반겼다.

교과서 크기 84쪽짜리 이 책은 한국전래의 순장바둑에 대한 설명서 성격이 강하다. 순장바둑은 우리나라 고유의 재래식 바둑으로 화점(花點)에 흑돌과 백돌을 대칭적으로 각기 8개씩 미리 놓고 두기 시작한다. 발행처는 경성위기연구소, 편자는 ‘국수’로 불렸던 채형락(1878∼1937·일명 최극문)씨.본명보다는 최극문으로 널리 알려진 그는 노사초 국수의 전성시대에 당대 2인자로 손꼽히던 실력자. 바둑계의 원로들에게는 이 월간지가 3호를 끝으로 발행이 중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책 내용을 보면 흑백이 서로 8점씩 놓은 상태에서 시작된 순장바둑 기보가 정선바둑 1편, 넉점 에서 8점까지 접바둑 5편, 총 6편 실려 있다. 각 기보는 8회에 나눠 상보로 소개하고 있다. 또 당시 국내에 퍼지기 시작한 현대식 바둑을 ‘일본식’이란 이름으로 2국 소개하고 있어 시대의 흐름을 읽을 수 있게 해준다.

이밖에도 △순장바둑 정석법 8가지 △묘수풀이책인 현현기경에 나오는 ‘육출기산세(六出祈山勢)’등 묘수 4문제 △어떤 궁도가 되면 돌이 죽는지를 설명한 8가지 궁도법이 실려있다.

기보 상의 좌표를 가로 19로는 ‘갑을… 임계자축… 미신’십간(十干)과 십이지(十二支)의 일부로, 세로는 한자 1부터 19까지로 표현하고 있는 점이 색다르다.순장바둑은 이같은 보급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대식 바둑에 밀려 쇠퇴하기 시작, 해방 후에는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반상에서의 자유로움을 추구하는데 한계 때문이랄까, 상상력의 빈곤에서 비롯된 경쟁력 부족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조헌주기자·아마3단〉hans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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