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마이너 리그(30)

  • 입력 1998년 11월 22일 20시 26분


반정 ⑦

김부식은 해병대에 자원 입대했다. 게릴라적인 근성에 매력을 느꼈는지 아니면 ‘누구나 들어올 수 있었다면 나는 해병대를 지원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문구가 그의 열등감을 자극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는 또 머리띠를 질끈 매고는 몰상식하게도 〈일반상식〉책을 달달 외웠다. 그리고 기자시험에 합격했다. 그 즈음은 기자시험이 언론고시로 불릴 만큼 경쟁률이 높았다.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소문이 퍼져서가 아니라 월급이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이러저러한 경험을 통해 전의(戰意)로 단단히 무장한 김부식은 사회부 기자가 되었다.

경찰 출입 기자로서 김부식의 악명은 꽤나 높았다. 기억하기 좋은 이름을 가졌고 그 이름에 걸맞는 문장력과 극우적 성향을 지닌 것도 그의 출세에 도움이 되었다. 또 그는 ‘오프 더 레코드’의 신의를 저버리고 기사를 써제끼기로 유명했다. 전화하는 모습을 보면 그의 위세를 짐작할 수 있었다. 오십이 넘은 하위직 공무원에게 “내 말 제대로 듣고 있는 거야? 당신 지금 앉아서 전화 받지? 당장 일어나서 못 받아?”라고 소리치기 일쑤였다. 자기가 전화 걸 용무가 있을 때 마침 전화가 걸려오면, 벨이 울리고 있는 전화기를 한 번 들었다 놓아 끊어버리고는 제 전화를 걸었다.

부식이 중요한 용건으로 내게 전화를 걸어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날도 나는 그의 전화를 건조하고 무심히 받았다. 부식은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던 한 남자에 대해 이야기했다. 부부가 함께 조그만 꼬치구이 체인점을 했는데 밤늦게 가게문을 닫고 돌아오다가 남자가 운전중에 잠깐 졸았던 모양이었다. 무슨 충격이 느껴져 눈을 떠보니 차가 가로수를 들이받은 채 멈춰 있고 조수석의 아내는 죽어 있었다. 아내는 병원 영안실로 옮겨졌다. 살인 용의자로 조사를 받고 있는 남편은 아내의 장례를 치르게 해달라고 애원했다. 그 부부가 두환과 소희였다.

그 얘기를 듣자마자 내 동공은 실로 12년만에 처음으로 크게 확장되었다. 소희가 떠난 지 12년째였던 것이다.

부식은 사건기사를 부르듯이 육하원칙에 따라 상황을 설명했다. 자기의 말 한마디로 당장 두환이 풀려났다는 걸 강조하고 싶은 듯했다. 분명 두환은 부식을 보고 “네가 정말 꼬마병정이냐? 훌륭하게 자라주었구나. 나를 풀어주다니 어쨌든 고맙다, 꼬마병정” 했을 법한데 그 말은 전하지 않았다. 눈물을 훔치며 아내의 시신을 보러 가더라는 말뿐이었다. 눈물을 훔치며 소희의 마지막을 보러 가야 할 사람은 두환만이 아니었다.

“어느 병원이야?”

내 목소리는 덜덜 떨렸다.

“왜, 가게? 두환이 알아보기는 쉬울 거다. 늙기는 늙었어도 별로 안 변했어.”

“여자 말야… 살아날 가망이 없대?”

“무슨 여자? 아, 두환이 마누라? 즉사라니까.”

나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복도로 나가 창가에서 한참동안이나 최루가스에 둘러싸인 시위대를 내려다보았다. 내 얼굴은 심각했다. 개띠 동기가 지나가다가 내 어깨를 툭 치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우리 승리하리라.

<글: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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