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양기대/여야총재의 법치관

  • 입력 1998년 11월 11일 19시 37분


10일의 여야총재회담은 법치주의 원칙에 어느 정도 오점을 남겼다.

여야가 회담 성사를 위한 협상과정에서 사정(司正)대상 정치인의 선처문제를 흥정의 대상으로 삼은데다 정치권이 담합에 의해 검찰수사에 개입하는 나쁜 선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여권의 한 원로정치인은 “역대 어느 정권도 총재회담을 위해 비리정치인 처리문제를 타협한 적이 없다”며 “정치인 사정에 대해 여야간 흥정이 있었다면 현정부의 개혁은 물건너간 셈”이라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데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의 책임이 크다.

김대통령은 최근 전국검사장과의 오찬 및 자민련 박태준(朴泰俊)총재와의 조찬회동에서 ‘선출직 공무원에 대한 불구속 수사’를 언급함으로써 여야간 막후협상에서 합의한 사정대상 정치인의 선처를 추인해줬다. 수사를 맡고 있는 검찰은 김대통령의 발언을 불구속 수사 지시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이총재도 당내입지 강화와 소속의원들의 이탈 방지를 위해 사정대상 정치인에 대한 선처문제를 외면할 수 없었겠지만 대법관 출신으로서 법치를 정치에 굴복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정대상인 한나라당 중진 K의원이 최근 한 골프모임에서 “영수회담이 열리면 (내 문제는)다 해결되고 불구속될 것이다. 그래서 홀가분해서 나왔다”고 말한 것도 이같은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김대통령은 정치인 사정에 대해 여러 차례 “검찰은 매섭고 무서워야 한다. 정치적 고려를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고 한 고위사정관계자는 전했다. 김대통령이 이번 총재회담 이후에도 이 원칙을 지키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양기대<정치부>k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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