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시늉뿐인 정부인력감축

  • 입력 1998년 10월 27일 19시 29분


정부와 정부투자기관은 인력감축의 사각지대인가. 구조조정을 한다면서 대기발령자의 면직유예기간을 늘려 봉급과 상여금까지 장기간 지급하다가 그것도 모자라 대부분을 다시 구제하는 것이 요즘 정부가 하고 있는 인력감축이다. 민간기업에 강력한 구조조정을 촉구하던 정부가 막상 자체인력에 대해서는 감축의 시늉만 내고 있다니 낯두껍다.

정부부문의 생산성 향상은 우선 비효율적 조직과 인원을 줄이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권한과 규모를 줄여 작은 정부를 만들겠다는 약속이 나온다. 현정부도 출범 직후 예외없이 작은 정부를 선언했고 환란 속에 이 약속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실천과제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실상은 어떤가. 국감자료에 따르면 행정자치부만 보더라도 지난 6월 조직개편때 2백12명을 대기발령한 후 불과 3개월만에 89명을 제외한 나머지를 모두 구제했다. 최종 면직은 이보다도 훨씬 줄 것이라는 소식이고 보면 속았다는 느낌마저 든다.

정부가 이렇다 보니 정부의 눈치에 민감한 공기업들 역시 예외는 아니다. 겉으로는 대규모 인원감축을 실시한 것처럼 발표했지만 실제로는 정년퇴직자 등 자연감소 인원까지 포함시켜 뻥튀기식 구조조정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감자료에는 도로공사 토지공사 수자원공사 주택공사 등이 이에 해당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스공사 수출보험공사 등은 평사원을 줄이고 간부직을 늘림으로써 인건비지출이 작년보다 오히려 더 늘게 생겼다는 지적도 있다. 무엇을 위한 인원감축인지 어리둥절해진다.

내년에도 이 추세는 크게 개선될 것 같지 않다.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을 보면 공기업과 정부출연 및 위탁기관의 인원감축 목표는 22∼24%인데 중앙정부의 인력감축 목표는 그 절반의 비율에도 미치지 못하는 11%로 되어 있다. 최근의 눈가림식 사례를 볼 때 그나마 지켜질지도 의문이다. 30% 이상의 직원을 길거리로 내보냈던 그 많은 민간기업들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모범을 보여야 할 정부가 편법으로 국민의 눈만 가리려 한다면 실망스런 일이다.

우리처럼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았던 영국은 사태 직후 비만증에 걸린 정부가 자신의 몸부터 잘라내기 시작했다. 공무원수를 70만명에서 56만7천명으로 19% 줄였고 공기업 종사자는 1백78만5천명에서 47만명으로 감축했다. 그 결과 행정서비스는 놀라울 정도로 신속해졌고 예산도 22% 이상 절감됐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영국은 국난을 무난히 극복할 수 있었다. 환란을 이겨내려면 영국의 교훈을 본받아야 한다. 정부부터 고통분담에 솔선수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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