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낙연/內政에는 「감동」이 없는가?

  • 입력 1998년 10월 26일 19시 51분


우연인가. 김대중대통령은 지난 6월 미국방문에서 돌아와 장관들을 꾸짖었다. 이번에는 일본방문에서 귀국해 내각을 또 야단쳤다. 왜 그랬을까. 외교의 성공에 비해 내정(內政)의 진행은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기적은 기적적으로 오지 않는다.’ 아사히신문은 김대통령의 일본국회 연설을 그런 제목으로 크게 보도했다. 한국의 민주화와 정권교체라는 기적은 기적적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한국인들의 피와 땀으로 이룩됐다는 대목을 아사히는 중시했다. 연설은 많은 일본인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런 감동도 보태져 일본인의 78%가 김대통령의 방일결과를 좋게 평가했다. 한국인은 81%가 만족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방미에 이어 방일도 성공적이었다.

내정에도 성공이 적지 않다. 특히 외환보유고 증가와 환율 금리 물가의 안정은 큰 성과다. 그러나 거기에는 외국의 도움이 컸다. 게다가 그런 성과가 주는 만족은 일시적이다. 시간이 지나면 당연한 일처럼 돼버린다. 사람들의 관심은 이미 얻어진 성취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늘 새로운 것을 찾는다. 그것이 신통치 않으면 좌절 불만 분노를 느낀다.

사정(司正)을 한다더니 바로 그 대상 정치인들이 의사당을 활보하고 TV화면에서 웃고 있다. ‘세풍(稅風)’과 ‘총풍(銃風)’도 갈수록 작아지고 꼬이는 것같다. 8·15에 ‘제2의 건국’을 선언했지만 10월2일에 ‘제2건국 범국민 추진위’가 창립됐을 뿐이다. 돈이 풀렸다는데 돌지 않는다.실직자 대책은 아직도 헤매는 듯하다…. 그런 인상들이 ‘되는 게 뭐냐’는 물음을 낳고 있다. 그런 물음이 김대통령 취임전후의 감동을 상쇄하려 하고 있다.

외교의 감동이 왜 내정에는 없는가. 외교와 내정의 거리는 어떻게 메울 수 있는가. 그 힌트는 내정과 외교의 괴리가 왜 생기는가에 숨어 있다. 외교, 특히 정상외교와 내정은 대체로 세 가지에서 다르다.

첫째, 정상외교는 많은 국민에게 감상(鑑賞)의 대상이지만 내정은 체감(體感)의 대상이다. 내정은 선언이나 합의로 끝나지 않는다. 내정방향이 아무리 좋아도 국민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내정은 관념보다 생활이다. 김대통령이 경기 실업 부패같은 체감분야를 각별히 챙기도록 내각에 지시한 것은 옳다. 그러나 지시보다 중요한 것은 결과다.

둘째, 정상외교는 한정된 의제를 다루지만 내정의 과제는 무한하다. 정상외교는 대통령과 작은 팀이 맡을 수 있으나 내정은 그렇지 않다. 내정은 광범하고 체계적인 진용을 요구한다. 대통령의 영향범위는 정상외교보다 훨씬 좁다. 국민은 대통령 못지않게 비서실 장관 차관 국장 과장의 면면과 그들의 짜임새만으로도 내정에 실망할 수 있다.

셋째, 정상외교는 단발적(單發的)이지만 내정은 연속적이다. 정상외교는 효과가 금방 나타날 수 있으나 내정에 효과가 나려면 많은 절차와 시간이 소요된다. 사람들은 그것을 참기 싫어한다. 그래서 하나라도 확실히 매듭짓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전략이 필요해진다. 많은 것을 펼쳐놓고 별로 주워담지 못한다면 펼치지 않느니만 못할 수도 있다.

소수정부가 가장 의지해야 할 것은 국민의 감동이다. 감동을 주기는 어렵지만 잃기는 쉽다.

이낙연<논설위원>naky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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