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윤종현/국민인권委 제기능 하려면…

  • 입력 1998년 9월 28일 19시 23분


정부가 25일 세계인권선언 50주년을 맞이해 인권법을 제정하고 국민인권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밝힌 것은 일단 반가운 일이다.

더구나 이번 법안에는 수사기관의 인권침해 행위를 근절하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 있고 교정시설에 대한 시찰권 등도 포함돼 있어 그동안 사각지대에 있던 국내의 인권상황을 획기적으로 개선시킬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법무부가 밝힌 이번 구상에는 여러가지 문제점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인권위원회의 위상에 관한 것이다. 이번에 발표된 법안을 보면 인권위원회는 독립된 특수법인으로 구상되어 있고 그 법인의 최고 의결기구인 이사회를 구성하는 이사들은 대부분 법무부장관이 제청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되어 있으며 위원회의 실제 활동을 담당할 인권위원들은 이들 이사들로 구성된 이사회에서 제청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되어 있다.

▼ 독립성 보장 어려울듯 ▼

이는 아마도 인권위원회에 현재의 한국소비자보호원과 비슷한 위상을 부여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우리의 현행 법제상 이러한 특수법인은 관할 정부부처의 관리 감독을 받도록 되어 있다. 더구나 그 의사결정 담당자들을 대부분 법무부장관이 제청해 임명하도록 하는 것은 인권위원회가 법무부의 감독을 받는 여러 기관이나 법인 중 하나에 불과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본래 국가인권기구란 어느 나라에서나 인권침해행위를 자행하는 여러 국가기관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앞으로 설치될 국가인권위원회는 검찰이나 경찰 등 수사기관에서의 인권침해행위를 감시해야 할텐데 법무부 산하 기관이나 단체의 위상을 갖고 그러한 역할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한 위원회가 이같이 구성되는 한 국가인권기구의 설립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는 외부로부터의 독립성을 보장받기도 대단히 어려울 것이다.

국가인권기구가 국제인권법 시대의 현대 민주인권국가에 요구되는 새로운 국가기구로서 현대적 민주헌정질서의 불가결한 일부를 이루는 것이라면 그 위상은 준헌법적 기구로서의 위상을 가질 수 있도록 설정되는 것이 무엇보다 긴요하다. 그러므로 이번 법안은 앞으로 여론수렴 과정과 법안 심의 과정에서 대폭 수정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둘째, 법무부는 인권위원회 결정의 효력에 관해 국민고충처리위원회와 유사하게 권고적 효력만을 인정하고 있다. 국민고충처리위원회가 국민의 일반 민원을 처리하는 행정기관의 성격을 가지고 있음에 반하여 인권위원회는 보다 민감한 사안에 관해 다른 막강한 권력기관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그런데도 인권위원회에 대해 권고적 효력만을 인정할 경우 위와 같은 권력기관들에 권고 내용을 강제할 마땅한 방안이 없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인권위원회는 교육이나 홍보, 광범위한 조사나 정책적 권고 등 다양한 활동을 하게 될 것이나 이같은 활동도 권고적 효력 외엔 다른 방안이 없다.

적어도 개별적 침해의 구제조치에 관한 한 어느 정도의 구속력을 인정해 이를 강제할 수 있어야 국가인권위원회의 활동내용에 실효성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법무부는 인권위원회의 업무범위를 차별행위와 수사기관에 의한 인권침해행위로 한정하고 있다. 우리 실정에서는 이 두가지 영역이 아직도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널리 인정되고 있는 광범위한 인권의 내용을 이렇게 협소하게 상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므로 이러한 영역을 설정하더라도 앞으로 그 관할 대상을 확대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 권력기관 강제 방안을 ▼

이번 안이 이처럼 여러가지 문제를 갖게 된 것은 법무부가 인권법 제정과 국민인권기구 설립의 중요성을 간과한 채 광범위한 여론수렴을 게을리했기 때문이다. 법무부는 이 안을 마련하면서 전문가나 민간인권단체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았음은 물론 심지어 정부부처간 혹은 당정간 협의조차 거치지 않았다고 한다.

세계인권선언 50주년이라는 시한에 맞춰 법안을 공포하는 현실적인 사정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다른 어떠한 법안보다 범국민적 합의에 따라 제정되어야 할 인권법과 국민인권기구의 설치가 이같이 졸속으로 처리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국내 인권상황을 개선시키려는 모처럼의 정부의지가 그 절차의 미숙이나 소홀함에 의해 행여라도 훼손되지 않도록 앞으로 충분한 여론수렴과 진지한 논의가 이루어져 국민적 축제분위기 속에 인권법이 제정되고 통과되기를 기대한다.

윤종현(변호사·民辯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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