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학준/「햇볕정책」 신축성 필요한 때

  • 입력 1998년 7월 15일 19시 31분


김대중(金大中)정부의 대북 ‘햇볕정책’이 다시 시련에 직면했다. 6월 하순 속초에서 일어난 북한 잠수정 침투 사건 때만해도 정부는 햇볕정책에 대한 사회 일각의 거센 비판을 그런대로 누그러뜨리며 겨우 수습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때로부터 20여일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 묵호에서 똑같은 사건이 일어나자 조용하던 다수조차 의문을 제기하기에 이르렀고, 따라서 아무리 햇볕정책의 우월성을 강조해온 정부라고 해도 일단 북한에 대해 강경하게 대응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 北이중전략 대처해야 ▼

그점은 15일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의 결정이 잘 말하고 있다. 새정부 출범이후 처음으로 대통령 주재 아래 열린 이 회의는 북한의 잇따른 침투도발 행위가 정전협정과 남북기본합의서 위반임을 북한이 시인하고 이에 대한 사과와 관련자 처벌, 그리고 재발방지 약속 등 우리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도록 북한측에 요구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필자는 총론적 시각에서 햇볕정책이 옳다고 생각한다.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달성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북한의 지속적이면서 민주적인 변화를 통한 남북한 사이의 접근과 수렴인데, 북한의 그러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는 폭풍보다 햇볕이 효과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론에 들어가면 햇볕정책의 내용은 여러 모습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자연세계에서도 햇볕은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으며, 밤중에는 달빛만 있을 뿐 햇볕은 아예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달리 표현해 대북정책의 기조로서는 햇볕정책이 타당하다고 해도 막상 현실세계의 변화하는 상황에 적용시킬 때는 그때마다 열기(熱氣)를 달리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햇볕정책이 유연성과 신축성을 지녀야 함을 의미한다. 북한이 우리를 상대로 명백하게 군사적 도발을 하는데도 햇볕정책이란 용어에 교조적으로 집착해 미소(微笑)로만 응답한다면 그것은 송양지인(宋襄之仁)의 유화정책으로 비판받을 것이다. 군사적으로 도발하는 경우에는, 일단 햇볕의 열기를 바짝 줄이고 강한 대응을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모든 것에 “좋아 좋아”할 뿐인 물컹이가 아님을 인식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한반도 상황의 이중성에 비춰 가장 적절하다고 하겠다. 새삼스레 설명할 필요조차 없이, 한반도의 상황은 대결의 현실성과 대화의 당위성이라는 서로 모순되는 두개의 얼굴을 갖고 있다. 하나는 휴전선을 경계로 날카로우면서도 위험스러운 군사대결을 유지하고 있는 화약고의 얼굴이다. 다른 하나는 그렇기 때문에 대화를 유지시켜 전쟁재발을 방지해야 한다는 협상론의 얼굴이다.

북한은 이 이중성에 ‘담담타타 타타담담(談談打打 打打談談)’의 마오쩌둥(毛澤東)식 8자전법으로 대응하고 있다. 회담에 응하면서 싸움을 걸고, 싸움을 걸면서 회담에 응하는 이중 전략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햇볕정책은 교조적으로 집행될 때 ‘담’쪽으로만 기울었다는 비판을 받게 된다. 유연성을 동반하지 않은 햇볕정책은 ‘타’에는 무력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햇볕정책의 허실을 이렇게 지적하면서도 필자는 북한의 시대착오적인 행태에 분노하게 된다. 올해는 남과 북에서 각각 국가가 세워진, 그리하여 한반도에 분단국가체제가 들어선 지 50주년이 되는 해가 아닌가. 이제는 남과 북이 상호 불신과 적대감을 희석시키고 교류와 협력의 길을 열어 21세기 평화통일의 시대를 예비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럴진대 북은 한반도의 평화공존을 지향하는 남의 햇볕정책에 발을 맞춰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도 무력도발을 일삼는 까닭이 무엇인가. 북한의 강경파는 햇볕정책이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시킴으로써 자신들의 입지를 약화시킬 것이며 끝내는 북한을 민주화와 개방쪽으로 변화시킬 것이라는 두려움에서 그것을 좌절시키고자 획책하는 것으로 보인다. 참으로 개탄스러운 소아병적 권력욕의 산물이다. 그들에게는 국가안전보장회의의 결정처럼 강경하게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

▼ 국민이해 확충 노력을 ▼

그렇다고 남북 대결국면을 계속 유지하기는 어렵다. 정부는 시인(Acknowledgment) 사과(Apology) 재발방지보장(Assurance)의 3A를 반드시 받아내되, 북한을 대화로 유도하는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될 것이다. ‘담’의 시기에 나에 대한 상대방의 ‘타’를 잊지 않고 ‘타’의 시기에 상대방과의 ‘담’을 준비하는 것이 외교와 협상에서 원려지계(遠慮之計)다. 마지막으로 대북정책과 관련해 국민의 이해를 넓히려는 노력, 그리고 우방들은 물론 국제사회의 동조를 끌어내려는 노력을 더욱 많이 기울여야 할 것이다.

김학준<인천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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