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종석/금강산 관광과 잠수정 침투

  • 입력 1998년 6월 24일 19시 28분


우리는 요즘 남북관계만큼 예측이 어려운 분야도 드물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고 있다.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소떼를 몰고 판문점을 넘어 남북화해의 시대를 예고한 지 며칠만에 동해상에서는 북한 잠수정 침투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금강산 관광과 북한 잠수정 침투 사건을 동시에 접하면서 혼란과 의문을 느끼고 있다. 그들은 화해와 대결의 상징적 사건이 동시에 일어난 데 대해 혼란스러워 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정부의 대북포용정책의 유용성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또한 북한 잠수정 침투 사건과 관련해 역대 정부에서는 보지 못했던 신중한 정부의 대응태도를 보면서 조금은 어색해 하고 있다. 이러한 혼란과 의문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부의 대북포용정책과 안보정책, 그리고 위기관리 능력이 한꺼번에 시험대에 올라 있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상충적인 두 사건의 동시발생으로 인해 느끼는 혼란은 진상이야 어떻든 남북화해를 기대하고 있는 국민으로서는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대북포용정책과 신중한 대응에 대해서 의문을 갖는 것은 재고해 보아야 한다. 먼저 이번 사건으로 대북포용정책의 문제점이 드러난 것으로 이해하려는 것은 잘못된 견해다.

남북한 사이의 적대적 대립과 불신이 직접적인 안보위협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안보를 확고히 유지하면서 남북한 화해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여기에는 남북간의 화해와 교류 협력의 확대를 통해 북한을 평화와 개혁개방으로 유도하겠다는 ‘햇볕정책’도 예외가 아니다. 정부 역시 대북 3원칙을 밝히면서 이 점을 분명히 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대북포용정책은 기본적으로 강력한 대북 억제력 위에 구사되는 것이다.

대화 없는 대북 억제력이 맹목적이라면 대북 억제력 없는 대화는 더욱 위험하다는 것을 우리는 분단의 역사에서 뼈저리게 체득해왔다.

남북대화와 안보는 동전의 양면인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북포용정책은 안보과잉 대화빈곤의 기존 대북정책에서 안보와 대화를 균형있게 추구하자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정부의 초기 대응이 매우 조심스럽고 신중했다는 점도 현 정부의 위기관리능력이 과거 정권들에 비해 매우 안정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긍정적인 대목으로 보아야 한다. 특히 이는 정부가 남북관계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고 오히려 냉정하게 처리하려 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과거 역대정권은 종종 대북문제를 국내정치에 이용하기 위해 충격을 완화시켜 국민에게 전달하기는커녕 오히려 증폭시키기까지 하였다. 그러다 보니 정부가 오히려 한반도 정세의 불안정성을 더욱 부추기는 꼴이 되고 그것은 결국 외국관광객들의 입국을 감소시키고 외부 투자가들의 발걸음을 주저하게 만듦으로써 경제에도 부정적 효과를 초래하였다.

사실 남북관계가 국내정치에 미치는 비대칭적(非對稱的)영향력 때문에 정치지도자 입장에서 전향적인 대북포용정책은 강경책보다 상대적으로 위험부담이 큰 정책기조다.

즉 남북관계에서 일어난 역대 사건들을 되돌아볼 때 긍정적 사건들이 집권세력의 입지를 강화시켜주는 정치적 파급효과는 아무리 중대한 역사적 사건이라 할지라도 대칭적인 위치에 있는 부정적 사건들의 정치적 파급효과에 비해 훨씬 미약했다.

냉전적 분단구조 아래서는 정치권력이 남북관계를 정치적으로 이용할 때 전향적이며 유화적인 방식보다 강성적이며 적대적인 방식이 훨씬 효과가 큰 것이다.

남북관계가 국내정치에 미치는 이러한 비대칭적 영향은 국내냉전구조의 온존에 따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비합리적 냉전구조는 변화되어야 한다. 결국 작금의 상황은 대북포용정책이나 정경분리정책의 정당성을 부인한다고 보기에는 이르다.

그러나 정부는 많은 국민이 불안해 하고 있다는 현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대북포용정책으로 인해 예견되는 위험성이 무엇인지 철저히 분석하고 대비해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해야 한다.

대북포용정책은 강력한 대북억제력에 기반해야만 실효성이 있으며 대북억제력은 국민의 컨센서스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종석<세종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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