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봉순이 언니(10)

  • 입력 1998년 5월 11일 09시 24분


나는 까맣고 반짝거리는 그 벌레가 사라져버린 신문지 바른 벽의 틈만 바라보았다. 지금은 온갖 약을 다 뿌리며 퇴치해야할 바퀴벌레가 바로 그것이지만 그 당시에 그 생명체들은 참으로 매혹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돈을 가져다 준다든가 하는 데에는 나는 별 관심이 없었다. 개를 데려다가 다음해이면 잡아먹는 주인집처럼 되는 것이라면 그것도 싫었다. 언젠가 내가 처음으로 만져보았던 그 누런 털이 솜털처럼 보드랍고 눈이 말똥말똥한 강아지도 결국 잡혀먹히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그 이후로는 주인집 할아버지가 가끔 머리를 쓰다듬으며 건네주던 눈깔 사탕도 받지 않았다. 왠지 그 사탕 속에서 개냄새가 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어린 나이에도 나는 생각했었다. 복날이면 비명을 지르며 제가 살던 마당에서 죽어가던 강아지들. 어떻게, 어떻게 자신이 키운 개를 잡아먹을 수 있을까 하고. 그럴 때면 봉순이 언니가 주인집 할아버지가 주는 사탕을 대신 받아서 내 입에 넣어주는 척하면서 자신의 입에 몰래 집어넣곤 했었는데 그럴 때면 나는 하루종일 봉순이 언니에게도 심술을 부리곤 했었다. 봉순이 언니가 내 입에 넣어주려고 했었대도 심술을 부렸겠지만, 아무리 개냄새가 나는 사탕이래도 사탕은 사탕인데 혼자만 먹는 봉순이 언니가 미웠던 것이다.

어쨌든 그날 아버지는 돌아왔다. 봉순이 언니는 예전에 미국에서 아버지가 부쳐온 사진을 꺼내들었다. 사진 속에서 아버지는 날씬한 자동차 앞에서 양복 윗도리를 어깨 뒤로 걸치고는 기다랗게 서 있었다. 봉순이 언니는 이제 아버지가 돌아왔으니 우리는 이런 차를 타고 다닐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들어선 아버지는 몹시 피곤한 기색이었다. 색이 허옇게 바랜 물색 바바리를 입고 무거운 짐들을 들고 있었다. 게다가 고모들과 어머니와 언니와 오빠가 눈을 반짝이며 바라보던 아버지의 무거운 가방 속에서는 내가 알 수 없는 글씨로 씌어진 책들만 무더기로 나왔을 뿐이었다. 고모들과 어머니의 눈에 실망의 빛이 역력했다. 아버지는 조그만 선물을 어머니와 고모들에게 내밀고는 나를 위해 머리가 훌렁 벗겨진 눈이 새파란 인형을 내밀었다.

그 인형이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나는 일단 그것을 받아들었다. 언니와 오빠에게 좋은 것을 많이 빼앗기고 있던 나는 나중에 버리더라도 챙겨놓는 것이 상책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아버지는 언니와 오빠에게도 작은 선물을 내밀었다. 언니와 오빠는 아버지라는 말이 어색하지도 않은지, 아버지 고맙습니다, 하고 얌전히 인사했다.

아버지는 우리 형제들에게 선물을 나누어 주다가 그제서야 아참, 봉순이가 있었지, 깨달은 것 같았고, 잠시 당황하는 빛을 보이다가 그냥 봉순이 언니를 모른 체 해버렸다. 서운한 표정에 봉순이 언니의 눈빛은 금세 촉촉해졌지만 아버지가 가방을 탁, 닫아버리자 익숙해진 체념의 표정을 지으며 내가 들고 있던 인형을 만지작거리며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엣다, 이거 봉순이 거다.

아버지의 태도 때문에 봉순이 언니에게 생겨난 서운함을 눈치챈 어머니가 자기 몫의 선물중에서 빨간 손수건을 내밀었고, 봉순이 언니는 그것이 원래는 제몫의 선물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금방 두꺼운 입술을 벌리고 헤헤 웃었다.

<글:공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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