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안기부 물갈이 이후…

  • 입력 1998년 4월 13일 19시 40분


안기부가 대대적인 조직개편과 물갈이 인사를 마무리했다. 단위 정부기관의 구조조정으로는 최대 규모이며 가히 국가정보기구의 재창설이라 할 만한 수준이다. 전체요원의 10%가 넘는 숫자가 사직하거나 직위해제됐다. 양적인 물갈이보다도 중간간부 이상 책임자급 거의 전원의 보직이 바뀌었다는 점에서 환골탈태라는 표현이 걸맞은 물갈이다. 특히 국내사찰 및 정치공작 부서인 정치처와 지역처를 축소, 격하조정하고 해외와 북한관련 부서를 확대개편한 것은 잘한 일이다.

안기부 개편은 과거 안기부 정치공작의 최대 피해자격인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그런 피해자가 다시 생겨서는 안되겠다는 의지를 실천에 옮긴 것으로 평가된다. 안기부는 61년 중앙정보부로 출범한 이래 정치공작과 위협통치, 야당 및 민주화운동가들에 대한 감시와 고문수사라는 오명으로 얼룩진 역정을 걸어왔다. 지난해 대통령선거때는 안기부장과 고위간부들이 북풍(北風)공작을 주도했다는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여당과 야당의 정치적 경쟁에서 항상 여당의 사병(私兵)노릇을 해 여야간 정권교체가 불가능하게 한 주요 장애요인으로 눈총을 받아왔다. 이런 전비(前非)가 안기부 대개편의 이유가 된 셈이다.

이제 안기부에 남은 과제는 전문성과 효율성 확보가 아닌가 한다. 국가정보기구의 능력이 21세기 국제사회 경쟁에서 얼마만큼 중요한지는 다시 말할 필요조차 없다. 통상적인 인력과 관료조직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과제를 성공적으로 해낼 때 정보기구에 대한 국민 신뢰가 쌓일 수 있다. 그것은 조직의 정예화로 효율성을 상승시켜야 가능한 일이다. 경제통상과 산업기술 정보의 수집 역시 매우 중요한 안기부의 기능이다. 국제통화기금(IMF)사태에서도 보듯이 국가위기는 안보쪽에서만 오지 않는다. 모든 위기경보가 정보기구의 몫이라는 생각으로 새 기능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새로 태어난 안기부는 더이상 과거에 얽매인 매도대상이어서는 안된다. 안기부 종사자들에게 국가안보와 국익 극대화의 견인차라는 긍지와 사명감을 심어주는 일도 새 정부의 과제다. 정보기구로서의 특수성과 기밀보안은 보장돼야 한다. 다만 과거처럼 특권이 아니라 국익증진을 위한 도구로만 활용돼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세계의 정보기관들과 교류할 수 있는 국제신인도도 거기서 구축될 수 있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어려울 때 정보기구를 이용하고 싶은 유혹에서 벗어나야 안기부가 정치적 오염에서 해방될 수 있다. 정보는 국가 자산이다. 미리 파악(先知)해야 승리자가 된다는 것이 동서고금의 전략사상이다. 그것이 국가정보기구의 존재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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