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 개편은 과거 안기부 정치공작의 최대 피해자격인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그런 피해자가 다시 생겨서는 안되겠다는 의지를 실천에 옮긴 것으로 평가된다. 안기부는 61년 중앙정보부로 출범한 이래 정치공작과 위협통치, 야당 및 민주화운동가들에 대한 감시와 고문수사라는 오명으로 얼룩진 역정을 걸어왔다. 지난해 대통령선거때는 안기부장과 고위간부들이 북풍(北風)공작을 주도했다는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여당과 야당의 정치적 경쟁에서 항상 여당의 사병(私兵)노릇을 해 여야간 정권교체가 불가능하게 한 주요 장애요인으로 눈총을 받아왔다. 이런 전비(前非)가 안기부 대개편의 이유가 된 셈이다.
이제 안기부에 남은 과제는 전문성과 효율성 확보가 아닌가 한다. 국가정보기구의 능력이 21세기 국제사회 경쟁에서 얼마만큼 중요한지는 다시 말할 필요조차 없다. 통상적인 인력과 관료조직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과제를 성공적으로 해낼 때 정보기구에 대한 국민 신뢰가 쌓일 수 있다. 그것은 조직의 정예화로 효율성을 상승시켜야 가능한 일이다. 경제통상과 산업기술 정보의 수집 역시 매우 중요한 안기부의 기능이다. 국제통화기금(IMF)사태에서도 보듯이 국가위기는 안보쪽에서만 오지 않는다. 모든 위기경보가 정보기구의 몫이라는 생각으로 새 기능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새로 태어난 안기부는 더이상 과거에 얽매인 매도대상이어서는 안된다. 안기부 종사자들에게 국가안보와 국익 극대화의 견인차라는 긍지와 사명감을 심어주는 일도 새 정부의 과제다. 정보기구로서의 특수성과 기밀보안은 보장돼야 한다. 다만 과거처럼 특권이 아니라 국익증진을 위한 도구로만 활용돼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세계의 정보기관들과 교류할 수 있는 국제신인도도 거기서 구축될 수 있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어려울 때 정보기구를 이용하고 싶은 유혹에서 벗어나야 안기부가 정치적 오염에서 해방될 수 있다. 정보는 국가 자산이다. 미리 파악(先知)해야 승리자가 된다는 것이 동서고금의 전략사상이다. 그것이 국가정보기구의 존재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