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나의 허니문]이웅진

  • 입력 1998년 3월 18일 18시 48분


94년말. 6개월전에 결혼식 날짜를 잡아놨는데 덜컥 회사가 망해버렸다.

“부도났다고 세상이 끝났어요? 그깟 어려움에 결혼까지 없었던 일로 하자니, 말이 안돼요.”

결혼을 미루든지 없던 일로 하자는 내 제안에 그녀는 막무가내로 따졌다. 그녀는 또 직업도 변변치 못한 사람에게 딸을 줄 수 없다는 장인장모에게도 “두고보세요. 딸 시집 잘 보냈다고 떵떵거릴 날이 있을 거예요”라며 오히려 큰소리를 쳐댔다.

막상 결혼을 결심하고 보니 어려운 게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일단 전셋집 마련은 뒤로 미루기로 했다. 함 예단 등은 아예 생략.

미아리 동네 예식장을 결혼식장으로 예약하고 턱시도 웨딩드레스 신부화장 부케 등 소소한 것들은 자원봉사 등으로 해결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압권은 신혼여행. 단돈 30만원을 들고 친구의 낡은 엑셀승용차를 빌려 무작정 서울을 벗어났다. 달리다 보니 청평유원지가나 왔다. 눈에 띄는 깔끔한 ‘러브호텔’로 들어가 ‘첫날밤’을 보냈다.

둘째날도 무작정 드라이브를 하다가 대성리로 접어들었다. 보트 빌려타고 자못 낭만과 무드를 잡았다. 그날밤은 대학생들처럼 민박집에서 하루를 묵었다. 셋째날은 온천. 서울오는 길에 너무 배가 고파 고속도로 휴게실에서 국수와 만두를 사먹었다. 서로 만두를 입에 넣어주며 얼마나 맛있게 먹었던지. 돌아올 때 지갑을 보니 10만원이나 남아있었다.

결혼후 다시 재기한 나는 힘들 때마다 우리의 신혼여행을 생각한다. 서로 좀 무심해졌다 싶을 때도 그 가난했던 시절에 우리가 키워놓은 살뜰한 사랑을 생각하면 아내에 대한 사랑이 다시 뭉클 피어오른다.

다만 당시 워낙 경황없이 떠나는 바람에 카메라를 챙기지 못해 지금도 나의 아내가 가끔 ‘신혼여행 사진 한장없다’고 투덜거릴 때는 못내 미안해진다. 사랑해 여보!

이웅진<선우이벤트대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