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그곳에 가고 싶다]붉디붉은 노을 감춘 소매물도

  • 입력 1998년 3월 12일 08시 19분


대학졸업반때였다. 졸업도 얼마 안남았으니 마음잡고 공부해야지하고 도서관에 앉아있는데 후배가 “술한잔하자”고 했다. 내 팔자에 무슨 공부냐, 책가방을 싸들고 술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시작한 술자리는 맥주 12병, 소주3병으로 이어지고 급기야는 ‘충동여행’으로 이어졌다.

후배가 끝까지 우겨서 찾아간 곳이 경남 통영 소매물도. 그곳으로 가는 배를 타기위해 선착장으로 가니 파도가 높아 배가 못 들어간단다. 후배는 거길 못가면 여기 온 이유가 없다하고…. 미칠 노릇이었다. 배에서 만난 사람들도 소매물도 예찬론자들이 많았다. 그들과 같이 통통배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당도한 섬 소매물도.

등대가 있었고 작은 분교가 하나 있었다. 그리고 장사에는 관심도 없는 어두컴컴한 가게가 하나 있었다. “야!이게 뭐 볼게 있다고 그렇게 오자고 했냐”는 나의 타박에 후배는 정색을 하고 “형, 저녁 소매물도가 진짜예요” 자신있게 말한다.

이윽고 노을이 지는 저녁무렵, 나는 정말 그섬에 반하고 말았다.

그렇게 아름다운 노을과 저녁을 태어나 처음 보았다.

‘그래, 모든 것은 겉모습만 봐서는 모르는구나. 소매물도가 바다중간에 저렇게 초라하게 앉아있는 것도 다 이 아름다운 석양을 만들기 위해서구나.’

나는 그때 겸허를 배웠다. 감춰진 아름다움이 더욱 아름답다는 것도 배웠다. 나도 저 섬처럼 살아야지.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드러내지 않되 향기가 묻어나는 사람으로 살아야지. 아! 소매물도 같은 곳에서 살면 나도 그 아름다움에 젖어들텐데. 정말 그섬에 또 가고 싶다.

김현룡(제일기획 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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