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김종필씨가 결단을…

  • 입력 1998년 3월 3일 20시 15분


정치가 어렵게 꼬였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첫 국정행위로서 국회에 낸 ‘김종필(金鍾泌) 국무총리’ 인준안이 한나라당의 완강한 거부에 부닥쳐 가결도 부결도 아닌 채로 묶였다. 그러자 김대통령은 김총리서리 임명을 강행했고 한나라당은 이를 무효화하기 위해 총공세를 펴고 나섰다. 위험한 형국이다. 누군가는 이것을 타개해야 한다. 우리는 그 매듭을 풀 수 있는 사람이 김종필씨라고 본다.

한나라당의 주장과 행동이 옳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본란은 김총리인준안을 무기명 비밀투표로 처리하도록 일관되게 촉구했다. 그럼에도 한나라당은 이를 무시했고 막판에는 받아들이는 체하다가 변칙적 방법으로 교묘하게 우회했다. 그런 처사는 국회법 정신과 의회주의 원칙에 어긋난다. 그러나 옳든 그르든 이것 또한 김대통령이 무시할 수 없는 거대야당의 집단의사인 것만은 사실이다.

김대통령으로서는 인사권을 침해받을 수도, 취임 초부터 야당에 끌려다닐 수도, 국정공백을 더 방치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총리서리체제가 정당해질 수는 없다. 총리서리체제는 위헌논란의 소지가 있는데다 야당이 반발하기 때문에 ‘행정공백’은 메워줄지 몰라도 ‘의정공백’을 부를 것이 뻔하다. 본란이 몇번이나 총리서리체제 출범에 신중을 기하라고 충고한 것도 그 때문이다. 고건(高建)총리의 제청으로 각료들을 임명한 것은 위헌시비를 줄이고 국정파행을 차단하기 위해 불가피했다 해도 김총리 서리체제로 가는 것은 유감이다.

이미 여야는 ‘힘의 충돌’로 치닫고 있다. 한나라당은 김총리인준 부결을 확인하기 위해 단독 임시국회를 소집하고 김총리서리 직무정지 가처분신청도 내기로 했다. 일각에서는 김대통령 탄핵까지 거론한다. 연립여당에서는 인위적 정계개편론이 힘을 더해가고 있다. 한나라당의 대여(對與)공세가 거세질수록 정계개편의 유혹도 커질 것이다. 이런 극한대치 상황에서는 새 정부가 추경예산안이나 각종 개혁입법안을 국회에 상정하기도 어렵다. 그럴 경우 경제위기는 심해지고 국민불안은 가중될 것이며 대외신인도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다.

이것을 피하는 최선의 방법은 역시 김종필씨의 용퇴라고 본다. 쉽지 않겠지만 김씨는 이 국난의 시기에 나라의 장래를 깊이 생각하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자세로 거취를 결단하는 것이 옳다. 고뇌가 크겠지만 김대통령도 다른 사람을 지명해 야당과 재협상하고 새로운 총리인준절차를 밟는 문제를 숙고할 때라고 본다. 이것은 무슨 ‘항복’이 아니라 ‘큰 정치’다. 지금처럼 꼬인 난국을 풀 수 있는 것은 꼼수가 아니라 큰 수다. 어느 쪽의 잘잘못을 떠나 이 숨막히는 상태를 최단시일 내에 끝내고 국민의 힘을 모아 경제회생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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