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문서로 드러난 「KT공작」

  • 입력 1998년 2월 19일 19시 41분


1973년의 ‘김대중(金大中)납치사건’, 이른바 ‘KT공작’이 당시 중앙정보부의 조직적 범행이었다는 것은 그동안 몇몇 관계자의 증언으로 얼마간 알려졌었다. 바로 그 ‘KT공작’이 단편적 증언이 아닌 문서로 처음 확인돼 또한번 충격을 주고 있다. 이제까지 정부당국은 중정(中情)의 관여를 공식부인해 왔으나 이제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 됐다. 본보가 단독입수해 보도한 ‘KT공작요원 실태조사보고’라는 비밀문서에 따르면 납치사건은 중정이 이후락(李厚洛) 당시 부장의 직접 지휘와 치밀한 사전계획 아래 9개조 46명의 요원을 투입해 저질렀다. 대명천지에 국가기관이 반정부지도자를 해외에서 극비 납치한 야만적 범죄행위를 자행했다니 참으로 가공(可恐)하고 부도덕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김대중씨 개인의 인권과 일본의 주권침해 문제까지 내포한 이 사건은 당시 한미일(韓美日) 3국의 민감한 외교문제로 비화했었다. 그럼에도 한일 양국 정부는 ‘정치결착(政治決着)’이라는 이름의 담합으로 진상을 덮어둔 채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번에 증거문건이 공개됨으로써 진상규명이 불가피해졌고 한일야합 여부 또한 재규명의 도마에 올랐다. 한일 양국은 이제 사건진상을 명명백백히 밝혀내야 한다. 피해당사자가 차기대통령이라는 점을 떠나 역사의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안기부 등 관계당국은 추가자료를 낱낱이 공개해야 한다. 관련자들은 역사를 위해 진실을 증언할 의무가 있다. 일본정부도 전폭 협조해야 옳다. ‘정치결착’에 이르기까지의 한일간 비밀교섭 기록도 공개해야 마땅하다. 관계자 처벌의 법적 시효는 끝났지만 진실규명에는 시효가 없다. 진상조사를 위해 한일 양국은 민관(民官)공동기구 구성을 검토할 만하다. 김대중차기대통령은 아사히신문과의 회견에서 “양국정부가 곤란하게 될 일은 하고 싶지 않다”며 민간기구에 의한 진상규명을 제안했으나 민간의 조사만으로 충분할지 의문이다. 한일간의 외교적 긴장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그것이 정부배제의 이유는 되지 않으리라고 본다. 이번 조사는 한일간의 비정상적 외교행태를 청산하는 계기도 돼야 한다. 밝혀져야 할 것은 많다. 특히 박정희(朴正熙) 당시 대통령의 지시 또는 사전인지 여부와 살해의도 유무 등이 핵심이다. 이번 문건은 박대통령이 최소한 사후보고를 받았음을 입증했지만 극비공작은 문서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상식이다. 이후락부장이 “나는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알아”라고 말했다는 이철희(李哲熙) 당시 중정차장보의 증언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사건의 성격과 관련해서도 이철희씨는 김대중씨를 ‘데려오라’는 지시만 받았다고 밝혔으나 국민회의는 ‘살인미수’로 규정하고 있다. 이번 문서 공개는 어떤 비밀공작이나 정치적 의혹도 한때는 은폐될지 몰라도 결국은 햇빛 아래 드러나고 만다는 평범한 진리를 재확인해 주었다. ‘김대중납치사건’은 개발독재시대의 부끄러운 역사다. 다시는 이처럼 수치스러운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진실을 꼭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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