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권재현/아내의 「PC유서」

  • 입력 1998년 2월 8일 20시 48분


“제 모든 사랑 당신께 바치고 떠나려합니다/진작에 떠나야 할 길이었지만/난 당신이 좀 더 평안하고 행복할 때 떠날 수 있기를 기다렸지요.” 6일 오전 PC통신 천리안의 문학동호회 ‘컴퓨터문단’에서 아내의 글을 발견한 오모씨(38·인천 계양구 계양동)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이제 내 모든 사랑 당신께’라는 제목의 이 글은 아내 배원미씨(37)가 자신에게 남긴 유서였기 때문이다. 5일 아침 일찍 집을 나간 아내는 이날 오후 서울 마포대교 아래에서 차디찬 시신으로 떠올랐다. 아내는 가출한 날 오후 4시20분경 평소 자주 글을 올리던 PC통신방에 유서를 띄우고 겨울강물에 몸을 던졌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날부터 내가 하얀 가루가 되어/이 세상 어느 곳에도 남아있지 않을 그 날까지의 모든 기억이/당신의 머리속에서 한가닥의 실오라기로라도/남지 않기를 원합니다.” 84년 친구의 소개로 만난 뒤 6개월간 매일 보았던 아내의 미소는 13년의 결혼기간 내내 변함없었다. 아내가 즐겨하던 PC통신 대화명도 ‘웃는 얼굴’이었다. 87년부터 공동으로 카탈로그 업체를 운영해 온 이들 부부는 93년 부도어음을 떠안게돼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늘 미소를 잃지 않았던 아내의 얼굴에서 서서히 미소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급한대로 집을 팔고 백방으로 뛰어다녔으나 어느덧 빚이 4천5백만원을 넘어섰다. 아내의 마음고생은 신장염 등 온갖 질병으로 나타났고 결국 손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손끝 발끝까지 무력함을 느끼며/내 진정 당신께 드릴 수 있는 마지막 한가지/온전한 내 마음속의 사랑을 드리고자 합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았던 아내의 유서를 읽던 오씨는 아들(13)을 꼭 껴안으며 끝내 눈물을 터뜨렸다. 〈권재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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