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김충식/검찰의 「칼과 저울」

  • 입력 1998년 2월 8일 20시 48분


한국 검찰은 여러가지 얼굴로 비친다. 강하기 이를데 없는, 권력에도 굴하지 않는 얼굴이 있다. 이를테면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씨를 구속하는 것과 같은 위력이다. 검찰에서는 “일본을 보라. 일왕 아들을 잡아 넣는 일이 있었느냐,중국 역사에 집권자의 친아들을 구속 처벌한 것을 보았느냐”고 기염을 토한다.전직 대통령을 두명씩이나 가두고 재판을 벌이는 힘도 자랑한다. 그런 말만으로 평가하면 일본 검찰이 현직 총리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를 구속했다고 해서 명예롭게 여기는 것이 별것 아닌 것도 같다. 하지만 꼭 그런 위용만 보여주는가. 5.18수사에서 왔다갔다 한것 처럼 허망하고 우스꽝스런 얼굴도 보여 주었다. 일찍이 검찰 수뇌부와 정예 검사들이 도열하고 앉아서 “성공한 쿠데타를 처벌한 선례가 없다”고, 5.18을 수사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그러다 갑자기 ‘위’의 한마디에 검찰은 느닷없이 벌떡 일어나 전직 대통령과 장관을 지낸 ‘별’들을 죄다 토벌하듯 했다. ‘성공한 쿠데타’도 처벌하는 지상최강의 검찰력을 떨쳐 보인다. 한없이 강해 보이다가 한없이 약해보이는 얼굴, 다들 웃었다. 그렇다고 해서 검찰 앞에서 웃을 만큼 간 큰 서민이 있을 수 없다. 그 깐깐하고 무서운 ‘칼’앞에서 떨지 않을 사람이 없다.작은 죄를 지어도 큰 죄를 지어도 온 가족 일가가 벌벌 떤다. 공무원 입장에서는 푼돈 얻어써도 잡아가고 인생을 망그러뜨리는 검찰이지 않은가. 하지만 그 서슬도 돈많고 줄이 잘 닿기만 하면 웬만큼 피할 수 있다. 그러니 형사(刑事)사건이 아니라 그저 흉사(凶事)라는 법조계의 자조도 나온다.어쩌다 억울한 사람이 다치는 것이라는 자조인 것이다. 국가형벌권의 잣대가 들쭉날쭉했다는 것은 법무부 장관도 지내고 ‘미스터검찰’이라는 별명도 붙은 모씨의 육성(92년12월 부산 초원복국집)에서도 드러난다. ‘대통령이 좋은 줄 어떻게 아나.해봤어야 알지. 고향 사람이 당선되어 피해만 안 당해도 그게 어디야’. 출신지역에 따라 원죄(寃罪)도 뒤집어 쓰고 피해도 당했을 것이라고 하는 이 사직(司直)최고지휘자였던 이의 증언. 더 이상 무엇을 말할 것인가. 6공말 청와대에 특명사정반이라는 것이 생겨 세상 기업들이 오금을 못펴던 일이 있었다. 그러나 노태우 비자금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그 서슬퍼런 칼을 드리우는 동안, 권력은 밀실에서 숱한 돈을 거두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지극히 명석하고 뛰어난 법조 엘리트들이 눈먼 권력의 하수인이 되고, 더러는 흉기(凶器)가 되는 것을 국민들은 수없이 경험해 왔다. 법이라는 그물은 큰 고기에는 찢기고 잔챙이만 잡는 그물이라는 서양 속담도 있기는 하다. 비리법권천(非理法權天)이라해서 이치는 법을 못이기고, 법은 권도를, 권도는 하늘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21세기를 맞는 법치국가 대한민국 검찰이 옛날 사람들의 희화화나 속언에서 위안을 얻을 것인가. 더러 검찰은 무고 사범에 짜증을 내고 고소 고발같은 사건이 한국엔 너무 많다고 푸념이다. 하지만 거기엔 검찰이 저질러온 업보도 숨어있다. 법을 ‘만인앞에 평등한 법’으로, 법치주의 나라 대한민국으로 믿지 못하게 해온 데 대한 자업자득도 있는 것이다. 이제 새정부가 들어선다. 더 이상 국가형벌권을 행사하고 민사분규를 다루는 ‘칼과 저울’이 힘을 좇거나 거기 휘둘려서는 안된다. 칼과 저울을 든 사람들이 의연하고 공정하게 버티며 일할 때 비로소 법치와 민주주의는 자리잡는 게 아닐까. 김충식<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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