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김진경/남북 이해하면 안될 일없다

  • 입력 1998년 2월 8일 20시 48분


지난 10년간 중국에서 살아오면서 중국인들이 즐겨쓰는 ‘이해만세(理解萬歲)’라는 말을 자주 인용해 쓰고 있다. 서로 이해만 되면 안될 일이 없다는 뜻이다. 중국인다운 넉넉한 삶의 해법이다. 우리처럼 가문(家門)을 따지고 족보를 섬기는 나라는 없다. 유태인은 성(姓)이 없고 이름뿐이다. 미국 사람들도 특별할 때만 성을 부르며 이름만으로 통한다. 중국인도 마찬가지다. 우리처럼 동창회가 많고 친목회가 많은 나라도 찾아보기 힘들다. 무슨 무슨 클럽 등 외국에 뿌리를 두고 있는 친목단체들도 한국에서의 확장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들었다. 친교(親交)도 좋고 봉사는 더더욱 훌륭한 것이다. 인간관계가 중시되는 사회에서 그런 다양한 모임을 통해 편익을 도모하고 활동영역을 넓혀 나가는 것을 나무랄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이러한 삶의 뒤안에는 합리적 접근보다는 정서적 접근 방식이 더 유리할 수 있는 사회적 역기능이 걱정되는 것이다. ▼가문 고향 동창 너무 중시▼ 우리는 내적 인연을 매우 중시한다. 우리 집안, 우리 고향사람, 우리 동창생, 우리 모임의 멤버만을 지나치게 챙기다보니 그 바깥의 인간관계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가신(家臣)이 생기고 대외적으로는 가장 폐쇄적인 나라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결코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다. 내가 얻은 만큼 주고, 내가 필요한 것은 남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먼저 나 자신부터 마음을 활짝 열고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고장을 한국화하고 마침내는 내 나라를 세계화해야만 비로소 상호간의 이해에 의한참다운 협력관계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와 같은 연장선상에서 남과 북의 문제를 한번 생각해 보자. 우리의 당면 최대과제는 물론 경제위기로부터의 탈출과 새로운 경제체제의 구축이다. 그러나 보다 더 거시적인 안목에서 우리 민족의 가장 값 높은 과제는 남북간의 이해증진과 관계조정이다. 남과 북은 이웃이 아니라 형제요 가족이요 한 민족이다. 중국의 대문호 루쉰(魯迅)의 시에 ‘아무리 원한이 맺혀 있어도 형제는 한번 만나서 웃기만 하면 지난날의 원한이 없었던 것이 된다’는 구절이 있다. 형제는 형제이니 서로 용서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 남북의 형제들이 지난날의 원한을 어떤 형태로든 풀어야만 한다. 지난 10년간 1백여 차례 남북을 오가면서 남북의 형제들을 만나왔다. 지난해 성탄절엔 함경북도의 어느 산 마을에서 지냈다. 날이 갈수록 남북의 동포들 사이에 오해와 불신이 너무 크고 깊어진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은 전쟁 당사자들의 시대가 아니다. 북의 인구 80%는 50세 이하다. 이들은 우리가 서로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러면서도 서로는 아직도 서로를 너무 모르고 있으며 알 기회도 많이 갖지 못한채 자칫 새로운 세기에 들어설까 걱정이다. ▼정경분리원칙 적용됐으면▼ 남과 북의 정치인들에게 호소하고 싶다. 위대한 우리 민족에 대한 신뢰와 미래를 향한 비전을 제시해 주었으면 한다. 우리의 5천년 역사는 고난극복의 역사이자 나름으로 창조적 에너지를 발휘해온 저력있는 민족의 역사다. 비록 오늘의 남북 현실이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시련을 겪고 있지만 60년대 북한의 부흥이나 바로 엊그제까지의 남한 경제의 기적을 세계는 주목해 왔다. 다시 일어서면 된다. 한반도 전역에 걸친 우수한 기술력과 인력을 창조적으로 조정하고 재배치할 수만 있다면, 적어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당위성에 대한 인식만 같이할 수 있다면, 다가오는 새 세기는 바로 우리 민족의 것이 될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체험의 소산이자 현장에서 얻은 깨우침이다. 2천5백만 북한 동포는 우리의 이웃이 아니라 가족이며 더더욱 우리의 적은 아니다. 또 하나의 정경분리(政經分離)원칙이 오늘 이 시점에서의 남북관계에 적용되었으면 한다. 김진경<옌벤과기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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