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혁명이 없는 한 강한 경제는 없다.』 세계는 지금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정보화 무한 경쟁 시대로 치닫고있다. 동아일보는 올 한해동안 21세기 미래시대를 준비하는 지구촌의 정보화현장을 찾아 그 역동적인 움직임을 생생하게 시리즈로 엮는다. 최고를 향해 뛰는 정부기관과 기업전사들의 모습을 통해 시련에 처한 우리 경제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탐색해 본다.》
미국 텍사스주 라운드록의 델(DELL)컴퓨터 사무실에 근무하는 스콧 에커트는 온라인담당자. 사무실로 출근은 하지만 실제 그의 근무처는 델의 인터넷 홈페이지 ‘www.dell.com’이다.
이곳에서 그가 만나는 고객은 하루 평균 1만5천여명. 그의 손을 거쳐 전세계 각지의 고객에게 출하되는 컴퓨터만 하루 4천여대에 달한다. 기술상담과 지원도 그의 업무중 중요한 부분.
소비자가 세계 어디에 있든 인터넷만 쓸 수 있다면 마우스를 클릭하는 것만으로 제품 선택과 주문에서 배달까지 한꺼번에 서비스받을 수 있다.
델이 사이버공간에서 이렇게 매일 벌어들이는 돈은 무려 3백만∼4백만달러를 웃돈다. 사이버 비즈니스가 이미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이다.
우리가 요새 자주 보고 듣는 ‘인터넷’ ‘전자우편’같은 단어들은 따지고 보면 세상에 등장한 지 불과 10년 밖에 안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사이버공간의 물결이 지구촌 경제와 미래의 그림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제통화기금(IMF) 한파로 벼랑 끝에 내몰린 국내 경제와는 달리 사상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는 미국. 미국의 정보통신 전진기지에 해당하는 곳이 바로 실리콘 밸리. 이곳의 팰러앨토에서는 지금 이름을 듣도 보도 못한 커머스넷(CommerceNet)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커머스넷은 마이크로소프트 IBM 휴렛팩커드 오라클 같은 내로라하는 정보통신기업 2백여개가 연합해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94년 4월 설립된 인터넷 전자상거래(Electronic Commerce) 컨소시엄이다.
전자상거래의 가장 큰 특징은 세계 어디에서든 빛의 속도로 비즈니스를 처리한다는 점. 커머스넷은 회원사간에 광속의 기술과 시장 정보를 공유하며 21세기 경제의 패자(覇者)를 꿈꾸고 있다.
‘인터넷 상거래’라고도 불리는 전자상거래는 금세기 산업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정보 혁명을 가져올 뇌관이다.
커머스넷에 따르면 97년 한해 동안 인터넷과 세계 PC를 통해 오간 돈이 1백억달러. 2001년에는 지구촌을 통틀어 최소한 3천1백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현재 26만개의 인터넷 쇼핑 사이트가 성업중이다. 2백여개가 고작인 국내상황과 비교하면 너무나 다른 세상이 아닐 수 없다.
델의 성공에 깜짝 놀라 컴팩 게이트웨이 등 경쟁사들도 인터넷 판매에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시스코 베이네트웍스같은 네트워크 분야 기업들도 전자상거래를 통해 고객을 찾고 원격 상담을 해준다.
미국의 닐슨 미디어리서치가 지난 12월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북미지역에서 5천8백여만명의 성인이 인터넷 쇼핑을 이용하고 있다. 이중 3천만명이 매일 인터넷에 상주하고 있다.
이에 비해선 전자상거래 규모가 아직까지 미미한 수준. 그 이유는 신용카드의 개인비밀이 노출되는데 대한 불안심리와 물건 값을 깎을 수 없다는 점, 그리고 물건을 직접 만져 보고 사는 쇼핑의 재미가 인터넷엔 없다고 생각하는 소비심리때문이라고 분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커머스넷은 “그것은 단지 착각일 뿐”이라고 일축해버린다. 커머스넷은 전자상거래를 단순히 인터넷 홈쇼핑으로 보는 좁은 시각을 교정해야 한다고 꼬집는다.
전자상거래는 기업이 인터넷을 통해 소비자에게 제품을 파는 것은 물론 비즈니스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조하고 있다.
사이버서점 아마존도 성공한 전자상거래의 표본. 이렇다할 점포없이 인터넷에서만 책을 팔아 불과 2년만에 세계 제일의 서점으로 신장했다. 성공의 비결은 점포임대료와 인건비를 포함한 간접비용의 절감으로 책값을 싸게 할 수 있었고 도서관을 찾듯이 인터넷에서 다양한 책정보를 제공한 것이 소비자의 심리를 파고 들었기 때문.
전자상거래는 기업 대 기업간의 거래에서도 활발하다. 제품 생산과 부품 수입, 외부 용역, 물류 등이 인터넷을 통해 거침없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공장이나 본사가 어느 곳에 있는지는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다. 기업 조직은 사이버공간에서 하나의 유기체처럼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그래도 발전 잠재력을 감안하면 아직은 전자상거래 혁명이 걸음마 수준.
지난 12월 17일 산타클라라 3com 본사에서는 97년을 마감하는 커머스넷 회원사 모임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업체 대표들은 “인터넷 상거래 활성화를 위해 뛰어넘어야할 장벽이 아직 많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이들은 전자상거래 시대에 앞서 나가기 위해서는 막연한 낙관이나 어설픈 선입관부터 버려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람들은 우선 인터넷을 통해 돈을 주는 것을 두려워하는 본성을 지니고 있다. 인터넷에서 쇼핑 정보를 찾고서도 물건은 직접 매장에 가서 구입한다.
그러나 신용카드와 은행이 처음 등장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면 할수록 인터넷 상거래는 빠르게 성장할 것이라는게 커머스넷의 예측이다.
더 큰 장벽은 아직까지 사람들이 인터넷을 이용하는데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점이다. PC를 구입하고 인터넷 접속을 위한 돈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컴퓨터의 기본 소양을 갖추기 위해 공부해야 한다.
이 장벽을 깨기 위한 시도들도 최근 가속화하고 있다. 리모컨을 다루듯이 인터넷을 쓸 수 있는 웹TV부터 휴대용PC(HPC) 지갑PC에 이르기까지 PC보다 사용이 간편하고 값싼 인터넷 단말기들이 한창 개발중이다.게다가 인터넷을 누구나 쓸 수 있는 카페나 공공장소 등 이른바 ‘인터넷 키오스크’들이 주위에서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그러나 인터넷에서 구입한 제품은 환불하기 어려운 점 등 풀어야할 숙제가 아직 많이 남아있다.
커머스넷은 전자상거래 이면에 감춰진 본질은 ‘글로벌 경제’의 등장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인터넷 거래는 곧 지구촌 단일 경제권 시대의 본격적인 개막을 알리는 것이다.
미국 클린턴 대통령이 지난 해 ‘인터넷 무관세’를 선언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파악해야 한다.1인 기업이라도 전자상거래 시대에는 대기업처럼 세계 시장을 무대로 마음껏 승부를 겨룰 수 있다.
지금까지 국가경쟁력의 핵심이었던 중공업 철강 조선같은 대자본 대규모 형태의 산업보다는 앞으로 저자본 신기술 아이디어 중심의 새로운 비즈니스가 전자상거래 시대를 주도해 나갈 전망이다.
이른바 ‘인터넷 라운드’의 등장도 멀지 않았다. 코 앞으로 다가온 21세기 글로벌 경제의 승부를 가리게 할 새로운 게임의 룰. 지구촌 그 누구에게나 예외없이 전자상거래라는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팰러앨토·산타클라라〓김종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