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새대통령에 바란다]이재호/예측가능한 정책펴야

  • 입력 1997년 12월 28일 19시 58분


김대중(金大中)대통령당선자는 사실 축복 속에 출발하고 있다. 경제는 어렵지만 그를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눈길이 전에 없이 따뜻하기 때문이다. 과거 한국의 어떤 대통령 당선자도 이런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다. 보수적인 월스트리트 저널지조차 『경제위기에 대한 그의 대응은 그가 이 시대에 적합한 인물임을 증명하고 있다』고 평가할 정도다. ▼ 일관성이 신뢰 첫걸음 기대가 큰 만큼 요구도 많다. 미국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미국이 김당선자에게 바라는 것은 한마디로 「예측 가능성」이다. 국내외정책 수행에서 원칙과 일관성을 유지해달라는 주문이다. 미국의 이런 바람은 물론 김영삼(金泳三)대통령에 대한 지난 5년간의 희망과 좌절에서 비롯되고 있다. 김대통령에 대한 불만은 주로 일관성의 결여에 있었다. 국내정치적 필요에 따라, 또는 여론의 향배에 따라 강온(强穩)을 시계추처럼 왔다갔다했다는 것이다. 국무부의 한 관계자는 5년전 김대통령의 취임일성이 『피는 물보다 진하다』였음을 상기했다. 민족애(民族愛)라는 큰 그릇에 남북관계를 새롭게 담아낼 것처럼 보였던 그의 대북정책은 그러나 과거 권위주의 정권 못지않은 강경책으로 선회했고 이로 인해 남북관계는 극심한 대립과 갈등을 겪어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김당선자는 비교적 일관된 원칙과 철학을 갖고 있는 것으로 비치고 있다. 그가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해 온 「햇볕론」은 사실 미정부의 「소프트 랜딩」(연착륙)과 같은 얘기다. 「북한의 외투를 벗기는 것은 바람이 아니라 햇볕」이라는 논리는 『북한을 붕괴시키기 보다는 안전하게 활주로에 착륙하도록 해야 한다』는 논리와 통한다.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엄밀히 말하면 김당선자의 대북정책과 닮은 점이 많았다. 93년 북한 핵문제로 긴장이 고조됐을 때 그 해법으로 제시한 김당선자의 「일괄타결안」은 클린턴의 해법과 기조를 같이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측 가능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것은 신뢰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첫걸음이다. 한국이 예측 가능할 때 미국과 북한이 한국을 믿고 거기에 맞춰나갈 수 있다. 워싱턴의 한반도문제 전문가들의 생각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돈 오버도프(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스캇 스나이더(미평화연구소) 고든 플레이크(애틀랜틱 카운실)에게 김당선자의 대북정책에 대해 조언을 구했더니 그들의 답은 같았다.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순간의 성패에 따라 죽 끓듯하지 말고 퇴임후에 평가받는다는 마음가짐으로 어떤 정책이든 일관성 있게 밀고나가라』는 얘기였다. ▼ 한미 역동적 관계 기대 이들은 여기에 한가지를 추가했다. 대북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창출하라는 주문이다. 『강경론자들은 설득하고 유화론자들에게는 경계심을 가지게 하면서 인내심을 갖고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는데 최선을 다하라』는 말이었다. 전망은 확실히 밝은 편이다. 뉴욕 타임스지는 20일 클린턴의 한 고위 외교정책보좌관의 말을 빌려 김당선자의 취임과 함께 한미관계는 「역동적 동반자 관계」(Dynamic Partnership)로 발전할 기회를 갖게 됐다고 전한 바 있다. 「역동적」이라는 표현에는 전향적인 움직임과 속도감, 창의성과 적극성이 내포돼 있다. 그것은 정체를 거부한다. 미국이 한국의 대통령 당선자에게 역동성을 기대하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고 희망적이다. 이재호(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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