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영화「변검」,남존여비 편견 깨지는 과정 그려

  • 입력 1997년 12월 17일 08시 16분


중국 4세대 대표감독 우톈밍의 영화 「변검」은 「얼굴이 변하다」로 직역된다. 이 제목은 우선 주인공 노인이 중국 전통극인 천극(川劇)의 가면 바꾸기 기예를 익힌 달인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자식 없이 떠돌던 노인이 우여곡절 끝에 얻게된 「손자」 구와(저우런잉 분)가 사실은 여자임을 알게된 후 극적으로 남존여비 인습을 떨치고 「낯빛을 바꿨다」는 중의적인 뜻을 지닌다. 물 흐르는 강호에 일엽편주 한척을 띄우고 살아가는 변검왕 노인(저우쉬). 군중 앞에서 손오공 삼장법사 저팔계의 가면을 순식간에 바꿔가며 서유기를 구전하는 기술로 살아간다. 『죽기 전에 기예를 물려줄 손자 한 놈 있었으면…』하고 되뇌는 것이 그의 하루다. 돈을 주고 사온 구와가 그의 시름을 덜어주지만 어느날 「그 놈」이 계집애라는 것을 알고 격노한다. 『이제부턴 할아버지 대신 주인님이라 불러』 「패왕별희」 「붉은 수수밭」 등 중국 현대걸작들의 성공배경에는 철저한 테마의식을 탄탄한 구성으로 엮어낸 시나리오 작가들이 있다. 중진작가 웨이밍린은 중국사회에 뿌리깊은 남존여비가 변검왕의 뇌리 속에서 깨져나가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구성해냈다. 유괴된 남자아기를 구출, 할아버지의 거룻배에 데려다놓고 길을 떠난 구와는 변검왕이 유괴범 누명을 쓴채 사형수가 되자 목숨을 걸고 구명운동에 나선다. 어리디어린 여자아이가 감옥지붕에 거꾸로 매달려 무고를 호소하는 장면은 이미 영화 앞부분에 제시된, 효녀설화를 다룬 중국경극 「관음득도」를 패러디한 것. 용등놀이 불꽃놀이가 화면에 피워올리는 붉은 색조와 흐르는 강의 푸른빛 대비는 오래도록 눈에 밟힌다. 10개국 영화제 19개부문 수상에 값하는 영상미. 이보다 더욱 극적으로 머리속을 파고드는 대목은 『나는 일곱번이나 팔려다녔다』며 눈물 머금는 구와의 절규다. 구와를 연기하는 아홉살배기 저우런잉은 이 작품으로 중국 주해영화제 여우주연상 등을 수상했지만 이전에는 마약밀매범을 부모로 둔 곡마단의 어린 단원이었다. 이 아이는 영화를 통해 자기 인생을 연기했던 것이다. 〈권기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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