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양수길/재협상발언 국제신뢰만 훼손

  • 입력 1997년 12월 11일 19시 59분


지금의 위기는 동남아의 외환위기와 국내의 기아사태 등을 계기로 시작됐다. 한국경제가 안고 있는 여러가지 위험요소들에 눈을 뜬 국제자본이 한국경제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고 한국경제를 기피한 결과다. 따라서 이 위기는 한국을 떠난 외국의 민간자본이 한국경제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여 다시 유입되기 시작하지 않는 한 지속될 것이다. 그런데 국제통화기금(IMF)구제금융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대한 국제적 신뢰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 합의내용 이행을 신뢰회복의 열쇠는 IMF와 합의된 경제조정정책의 착실한 시행에 있다. 금융산업과 재벌부문의 구조조정, 금융시장과 자본시장의 대외개방 그리고 재정과 통화의 긴축 등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이번의 구조조정정책은 국제자본가들이 우리 경제의 위험요소로 보는 점들을 시정하고자 하는 데에 주안점을 두고 있으며 우리로서는 이들의 신뢰를 다시 얻기 위해서라도 합의된 정책들을 시행하고자 하는 의지를 과시해야 한다. 그런데 IMF합의에 대한 국내의 반응이 난조를 보이고 있다. 이것이 국제투자가들의 신뢰 회복을 어렵게 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으로 IMF합의는 IMF가 그 최대주주인 미국과 「공모」하여 재벌의 「힘」을 빼고 한국경제를 약화시키려 한다는 주장이다. 또 어쨌든 재협상 등 IMF합의의 수용을 거부하고자 하는 듯한 발언이 들리기도 한다. 해외에 연일 보도되는 국내의 이같은 발언들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한국인들이 구조조정을 추진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아가서 미국시민은 왜 자기들의 귀중한 세금을 한국인으로부터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한국인을 위해 써야 하느냐며 반발하고 있다. 그 결과 자칫하면 IMF가 모금해줄 5백50억달러의 조성에 차질이 올 가능성도 없지 않다.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 1년내에 상환되어야 할 단기외채가 기업 자체적인 해외금융까지 포함할 경우 6백억달러대의 규모가 아니라 1천1백억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그러나 5백50억달러의 지원금융이나마 3년에 걸쳐 분할 지급된다. 앞으로 몇달이 크게 우려된다. ▼ 금융―재벌문제 시정기회 또 알아야 할 것이 있다. IMF합의의 핵심은 우리 스스로도 십수년간 줄곧 고치고자 했던 금융과 재벌의 문제를 시정하자는 데에 있다. 정경관(政經官)유착의 온실속에서 금융기관들은 외채를 동원해서까지 재벌들의 방만한 사업다각화를 무책임하게 지원하였고 정부는 이를 보호해 주었다. 그 결과 우리 경제가 감당못할 규모의 부실채권이 누적되어 온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경제질서는 「유착 자본주의」로 불리고 있다. 이것을 타개하겠다는 것이다. 왜 IMF, 즉 외세의 개입을 초래하였는가. 그것은 우리가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부끄럽지만 자주적 문제해결 능력을 상실하여 채권자의 압력을 빌려 수단으로 삼게 된 것이다. 우리의 경제구조조정은 미국을 위한 것인가. IMF의 최대주주로서 주주국들을 대표하여 미국이 대외개방을 위시한 강력한 경제개혁을 요구한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그리 원망할 일이 아니다. 채권국들이 투자가로서 우리에게 융자조건을 제시하는 것은 당연하다.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어야 하는 당사자인 우리 입장에서 볼 때 이런 저런 점에 대해 의문과 불만을 갖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이러한 점들은 IMF와의 지속적 협의과정에서 해결해 나가는 운용의 묘를 살리도록 해야 한다. 우선 결단력있게 합의를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것이 구국이요 자구의 길이다. 양수길(대외경제정책 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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