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재호/『한국은 못믿어』 차가운 국제 눈길

  • 입력 1997년 12월 4일 19시 54분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 금융에 대한 3당 대선후보들의 이행 서약을 보는 워싱턴 정가의 시각은 대단히 차갑다. 한국에서 분노의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으나 「국가 신뢰를 부도낸데 대한 4천만명의 담보」라는 입장이다. 근대 국가에서 정부가 체결한 조약이나 협정의 이행 의무는 당연히 다음 정부가 승계한다. 고르바초프때 소련이 한국으로부터 받은 30억달러의 차관을 러시아의 보리스 옐친정권이 넘겨받아 갚아나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데도 IMF는 굳이 세 명의 대선후보들로 부터 이행 서약을 받았다. 답은 자명하다. 한국에 대한 IMF, 또는 국제사회의 불신이 그만큼 깊고 크기 때문이다. IMF의 한 관계자는 『한국 국민들이 끓고 있다』고 했더니 『오죽했으면 그러겠느냐』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그는 한 예로 한국 정부가 제시한 성장률을 지적했다. 한국정부는 98년 성장률을 3%, 99년은 5.6%로 잡고 있지만 18.4%의 높은 금리 아래서 그만한 성장을 뒷받쳐 줄 수 있는 투자가 이루어지겠느냐고 물었다. 믿을 수 없다는 거였다. 다른 관계자들도 신뢰성을 지적했다. 이들은 당장 한국정부가 IMF 구제금융을 안받겠다고 해놓고 24시간도 못돼 입장을 바꾼 것, 정부가 제일은행 문제를 처음에는 시장기능에 맡기겠다고 해놓고 곧바로 말을 바꿔 2조원의 금융지원을 한 것이나 금융개혁법의 통과를 약속하고서도 이를 지키지 못한 것 등 허다한 불신의 예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이들은 한국정부나 국민이 IMF에 대해 갖는 서운한 감정은 이해하나 보다 냉철해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IMF에 대한 불편한 감정들이 표출되면 될수록 IMF나 국제사회는 『한국 정부나 국민들은 아직도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는 것. 반박하기 어려운 지적이었다. IMF의 진단과 처방이 맞고 안맞고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우리는 총체적인 신뢰성의 위기에 빠져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재호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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