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진영/한심한 기후협약 정부대표

  • 입력 1997년 12월 4일 19시 53분


교토(京都) 기후변화협약 회의에 참석한 한국대표단은 공부도 하지않고 시험을 치르는 학생과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직 의정서 초안도 다 안읽어 봤는데요』 회의를 일주일도 채 남기지 않은 지난달말 정부대표단의 일원으로 참가하는 환경부 공무원이 걱정스럽게 실토한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회원국간에 격렬한 논쟁이 오가는 이곳에서 우리 대표단은 실수를 연발하고 있다. 정부대표단은 지난 1일 오후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커다란 입장변화를 보여 우리나라를 포함한 개발도상국의 온실가스 감축 의무부담은 회의 이후로 일단 유예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표단은 하루도 지나지 않아 말을 바꾸어야 했다. 정부측 발표와는 달리 미국이 이날 저녁 전세계 언론을 대상으로 가진 브리핑에서 『개도국의 의미있는 참여 없이는 협상에 임할 수 없다』는 종전 입장을 재확인했기 때문이다. 대표단은 이튿날인 2일 오전 브리핑에서 『미국이 협상 전에 제출한 제안서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착오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선발 개도국의 발목을 끈질기게 물고늘어지는 미국의 입장은 한국으로서는 전투에 임하기 전 반드시 챙겼어야 할 「적국의 동향」이다. 공개된 적의 전략조차 꼼꼼히 검토하지 않았다가 망신을 당한 셈이다. 정부대표단은 또 선진국간에 쟁점이 되고 있는 「차별화」 「배출권 거래제」 등 중요한 용어에 대해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에도 쩔쩔맸다. 사석에서는 『사실은 협약의 절반도 이해 못하고 있다』고 실토하기도 했다. 세계경제의 틀을 뒤흔들어놓게 될 이번 회의를 앞두고 상대국들은 협약을 체결한 92년 리우회의 이전부터 전담팀을 만들어 치밀하게 준비했다. 회의를 20일정도 남겨둔 지난달 11일에야 주무부서를 정할 정도의 뒤늦은 시험준비로 어떻게 1백70개 국가가 출제하는 어려운 문제들을 풀어갈 수 있을지 딱하기만 하다. 이진영<사회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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