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섬뜩한 北의 赤化공작

  • 입력 1997년 11월 20일 20시 24분


국가안전기획부가 어제 발표한 북한 간첩단 사건은 한마디로 충격적이다. 특히 사회학의 태두로 학계를 이끌어온 고영복(高永復)서울대 명예교수가 36년간 고정간첩으로 암약했다니 놀라울 뿐이다. 그는 73년 남북적십자회담 자문위원으로 평양을 방문했을 때도 우리측 정보를 북측에 전달했고 그 후에도 충실히 북의 지령을 수행해 평양으로부터 기념메달과 상까지 받았다고 한다. 또 40여년 동안 간첩활동을 하면서 지하철 철도 등 국가 기간산업에 관한 정보를 북에 보고해온 서울지하철공사의 간부가 있는가 하면 지난 8월 직파된 최초의 부부간첩은 한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들에게 북한의 지령을 전달하고 다녔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북한은 결정적 시기에 제2전선을 형성하기 위해 무기류나 공작 장비를 은닉하려 전국 곳곳에 「드보크」를 설치해 놓았다고 한다. 지금까지 찾아낸 것은 여덟 곳이지만 얼마나 더 있을지 알 수 없다. 독침 독총 등 압수품목에 들어 있는 무기류들은 바로 인명살상용이라 가슴이 섬뜩하다. 실제로 지난 2월의 귀순자 이한영(李韓永)씨 피살이나 78년8월 서해에서 발생한 고교생 3명 실종사건도 모두 북한측의 소행인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이번 사건으로 북한의 새로운 대남 공작전술도 드러났다. 과거에는 남한내에 연고가 있는 월북자들을 공작원으로 양성, 침투시키는 연고선 공작을 해왔지만 지금은 북의 핵심공작원을 우리 사회에 침투시켜 고첩을 지도하고 새로운 대상자를 포섭하는 등 지하지도부 구축에 주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이른바 새세대 지도핵심공작원을 남파해 주로 운동권 출신을 포섭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북한은 이처럼 집요하고 악랄하게 대남 적화 기회를 노리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는 어떤가. 간첩이 『우리는 북에서 왔쉬다』해도 신고조차 하지않을 정도로 안보불감증에 걸려 있다. 이번 사건만 해도 2백여명에 대한 참고인 조사와 동향 내사를 벌이고 있다 한다. 생포된 부부간첩은 남해안을 통해 들어와 20여일 동안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남한사회 적응훈련을 해도 아무런 제재가 없었다는 것이다. 해안경비도 문제이지만 그들을 방치한 사회도 허점을 보인 좋은 예다. 간첩이 종횡무진 활약할 정도로 안보태세에 빈틈이 있다면 이건 예삿일이 아니다. 비록 남북한간의 큰 물줄기는 화해와 협력으로 가는 것이지만 대북(對北) 경계심만은 한시도 늦출 수 없다. 대선을 앞둔 정치권으로서도 이번 간첩단 사건을 호재니 악재니 하며 정략적으로 이용하려 해서는 안된다. 벌써부터 이 사건을 놓고 자파의 유불리(有不利)를 저울질하는 모양이나 안보에 관한 한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초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공안당국도 연루자들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간첩색출 작업에 최선을 다해야겠지만 선거철 민감한 시기인 만큼 불필요한 오해는 사지 않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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