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최연희/내 마음의 비질

  • 입력 1997년 11월 5일 08시 34분


마당에 나무가 열댓그루 정도 우거진 다가구주택에 살고 있다. 안마당과 바깥길까지 날마다 쓸기란 쉽지만은 않지만 청소된 모습을 보면 마음까지 깨끗해지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하지만 자주 쓸다 보니 마당청소가 이젠 아예 내몫이 되고 말았다. 오늘도 아침나절부터 빗자루를 들면서 아이들과의 일을 떠올렸다. 초등학교 2학년인 성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더니 『엄마, 오늘 학교 가는 길에 천원이 떨어져 있었는데 주울까 말까 하다가 그냥 갔어요. 잘했지요』 하는 것이다. 『그래 잘했어. 남의 물건은 손대지 말아야지』라고 대답은 했지만 뭐라 설명하기 힘든 불편함이 마음에 남았다. 하마터면 「누군가 금방 주워갔을걸」 하고 말할 뻔했으니 말이다. 내심 성현이가 너무 순진한건 아닐까 걱정도 됐다. 이어 유치원에 다니는 송현이가 『엄마, 다녀왔습니다』 하면서 뛰어들어온다. 유치원에서는 한달에 한번씩 그달에 생일이 들어 있는 아이들을 모아서 잔치를 베풀고 작은 선물도 나눠준다. 마침 송현이도 생일잔치의 주인공이어서 멋진 옷을 골라 입고 기대에 부풀어 나갔었다. 송현이는 3월부터 생일을 맞은 친구의 숫자대로 선물을 챙겨갔었다. 5백원 7백원 하는 학종이 지우개 액세서리 등을 준비해 가서 친구들을 축하해주었다. 송현이는 연신 싱글벙글하며 『엄마, 생일선물을 네개나 받았어요』 하더니 가방에서 선물을 꺼내 포장지를 벗기는 것이었다. 「아니 그동안 보낸 생일선물이 얼마나 되는데 겨우 네개뿐이야. 한달에 두세개, 많을 때는 대여섯개씩이나 싸서 보냈으니 적어도 스무개는 될텐데」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차마 겉으로 내색은 못했다. 『이건 세준이가 줬고요, 준용이는 연필이구요, 진솔이가 준 선물이 이거예요. 제일 큰 건 선생님이 주셨어요. 그런데 동기는 선물을 두개밖에 받지 못했어요』 하며 선물을 적게 받은 친구 이야기를 안타깝다는듯 했다. 순간 섭섭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 너무 창피했다. 그런 작은걸 보내면서도 되돌아오길 기다렸으니. 「준 것은 잊어버리고 못다 준 사랑만을 기억하리」 하는 시의 구절이 머리를 스쳤다. 난 어쩜 이렇게도 계산적일까. 좀더 순수할 수는 없는 것일까. 절로 한숨이 새어나왔다. 낙엽이 많아 힘겹게 비질을 하면서도 전혀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니면서 추하고 오염되고 계산적인 마음을 쓸어내듯 힘차게 비질을 한다. 너희의 마음을 닮도록 노력하리라.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아이들의 마음을 닮게 하소서」 하고 기도하리라. 최연희 (경기 부천시 원미구 역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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