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고장난 다리에 구멍 뚫다니…

  • 입력 1997년 10월 17일 20시 11분


참으로 위험천만한 일이다. 철골구조물에 수많은 균열이 생겨 철거논란을 빚고 있던 당산철교에 서울시 지하철공사가 고의로 32개의 구멍을 냈다. 다리 위로는 여전히 지하철이 지나다니던 지난해 5월의 일이다. 가뜩이나 붕괴 가능성이 높은 다리의 트러스에 직경이 22㎝나 되는 구멍을 여러 곳 뚫으면 어떤 위험이 있으리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지난 연말 다리가 철거되기 전까지 별사고가 없었던 것이 그나마 천만다행이다. 다리에 일부러 구멍을 낸 이유는 더욱 어처구니없다. 감사원 감사를 앞두고 현장직원들이 철골구조물의 균열 확산을 막기 위해 뚫는 스톱홀의 숫자를 실제보다 많게 상부에 보고했고 나중에 틀린 것을 알고는 보고서 숫자에 맞추기 위해 멀쩡한 곳에 구멍을 뚫었다는 것이다. 당시 당산철교를 이용하는 지하철 승객은 하루 30만명이나 됐다. 감사원 감사 앞에서는 수많은 인명의 안전 따위는 별 대수롭지 않은 것인지 기가 막힐 따름이다. 서울시 지하철공사는 이 문제가 국감 현장에서 제기되자 처음에는 펄쩍 뛰다가 나중에 사실임을 토로하고 관련 직원 한명을 직위해제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과정이 심상치 않다. 혹시 현장과 본부 사이에 보고가 오가는 과정에서 상급자의 지시가 있었거나 간부들이 이를 알고도 쉬쉬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현장책임자 한 사람을 징계하는 것으로 끝내서는 안된다. 이 점을 철저히 밝혀내 관련자를 문책하거나 처벌해야 한다. 지하철공사가 정말로 이 사실을 몰랐다면 당시 안전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당산철교에 대해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별 관심이 없었다는 얘기가 된다. 이처럼 무책임한 서울시 행정아래 다른 교량은 무사한지 다시 한번 꼼꼼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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