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군량미가 된 구호식량

  • 입력 1997년 10월 17일 20시 11분


작년 9월 동해안에 침투한 북한 잠수함에서 미국 적십자사가 북한에 지원한 쇠고기통조림 상표가 뒤늦게 발견됐다. 그것도 미국측에 의해서다. 1년이 넘도록 이를 찾지 못한 우리의 능력도 한심하지만 무엇보다 인도적인 구호식량을 군량미로 전용한 북한당국의 작태를 확인하게 돼 충격이 크다. 북한은 지난 95년에도 우리가 보냈던 쌀 15만t의 대부분을 군량미로 소비한 것이 드러나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런데도 꾸준히 식량 지원을 해 온 것은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는 북한 주민들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발견된 미국 통조림 상표는 북한이 그같은 선의(善意)를 무시하고 오히려 대남(對南)도발을 위한 군사력 강화에 구호식량을 악용하고 있다는 또다른 직접 증거다. 북한은 식량사정이 어렵다고 기회있을 때마다 국제사회에 호소하고 다니면서 군사력만은 계속 증강해 왔다. 총병력이 작년보다 9만여명이나 늘었고 공격능력도 현저히 향상됐다고 「97년판 국방백서」는 밝히고 있다. 북한은 이러한 군사비를 5%만 줄여도 지금의 식량난을 대부분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군사비를 줄이기는커녕 구호식량까지 끌어들여 군사력을 강화하고 있으니 할말이 없다. 대북 구호식량의 군사전용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분배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길밖에 없다. 북한에는 지금 세계식량계획(WFP) 직원 등 10여명의 모니터 요원만 상주하고 있다. 이들이 식량분배 과정을 모두 확인하기는 어렵다. 정부는 이번 일을 계기로 국제사회는 물론 북한측과도 분배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적극적인 교섭에 나서야 한다. 이번 증거물은 진작 확보했다면 대북 정책 전반에 상당히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당국은 그런 중요한 증거물을 놓치고도 한동안 놓친 사실을 숨기기까지 했다니 말이 안된다. 우리 정보 능력의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도 책임소재는 분명히 가려 처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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