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美 북한문제 전문가 에즈라 보겔교수

  • 입력 1997년 10월 13일 20시 06분


하버드대의 에즈라 보겔교수(페어뱅크 동아시아 연구센터 소장)는 미국내에서 손꼽히는 한반도문제 전문가다. 특히 보겔교수는 한국인의 역사와 정치문화 속에서 이를 파악하려 한다. 그는 95년부터 2년간 백악관 국가정보위원회(NIC) 동북아 정보분석관으로 일하면서 북한의 내부를 직접 들여다 볼 기회도 가졌다. 12일 그로부터 김정일(金正日)의 당 총비서직 승계와 앞으로의 북한에 관한 그의 견해를 들어보았다. ―당총비서직을 승계하기 위해 3년이 걸린 이유를 어떻게 보시는가요. 『승계를 서두른다는 인상을 주고싶지 않았을 겁니다. 효성이 지극하다는 것, 그리고 승계를 서두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그가 과연 김일성(金日成)의 지위를 물려받을 자격이 있는지 회의를 품었던 사람들까지도 아우르는 광범위한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고 봅니다. 영화의 극적 효과에 대해 정통한 그는 사람들을 오래 기다리게 만들면 극적 효과 또한 커진다는 것을 알았던 같습니다. 신비롭게 보이고 보통 사람들보다 더 높은데 위치한 것처럼 보임으로써 더 많은 영향력과 권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김정일의 당 총비서직 승계를 사회 문화적 관점에서는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북한 주민들은 의식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따라서 적절한 절차와 연출을 거쳐 높은 관직을 승계했다는 사실은 대중의 지지와 정통성을 강화시켜줍니다. 김정일은 총비서직에 오름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더 많은 정통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석직은 승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아버지에 대한 효성을 끝까지 이용하고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을 적절하게 표시함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변화를 실현할 지렛대를 확보해 나갈 것입니다』 ―관심은 역시 김정일체제의 노선과 정책 변화입니다. 또 정통성을 강화하려면 식량난부터 해소해줘야 할텐데요. 『1978년 중국이 개방 개혁정책을 추진할 때 중국은 미국으로부터 중국을 대표하는 유일한 국가임을 인정받았고 미중(美中) 정상화가 이뤄진 상황이었습니다. 즉 외부 환경이 안정된 가운데 개혁 개방이 추진될 수 있었습니다. 김정일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앞으로 나진 선봉 남포 그리고 다른 지역들에서의 경제특구가 더 적극적으로 추진될 것입니다. 점진적으로 농민들로 하여금 농작물을 자유롭게 팔게 허용하고, 중국처럼 가정의 경제는 가정이 책임지도록 하는 제도들이 북한의 경제개혁에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믿습니다』 ―김정일체제의 존속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있지 않습니까. 『평양 정권이 붕괴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다만 군부가 주도하는 일단의 보수적인 집단이 득세해 김정일에게 압력을 넣고 권력을 점진적으로 쟁취해가는, 그러면서도 대외적으로는 김정일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그런 변화는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정권에 대한 대규모 봉기가 있을 것이라는 어떤 신호도 나는 보지 못했습니다』 ―북한 권력구조에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김정일과 같은 연령층인 3대 혁명소조 세대들이 세대교체를 대변해 왔습니다. 김일성 세대들은 더 이상 권력을 쥐고 있지 않습니다. 김정일체제의 새로운 지배엘리트들이 국가와 주민을 계속 장악할 수 있을지는 경제를 개선하고 폐쇄와 고립으로부터 개방으로 전환해가는 과정을 얼마나 성공적으로 관리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고 봐야지요』 ―김정일체제에서 관료나 군부중에서 제2인자로 부상할 만한 인물은 누굴까요. 『분명치는 않습니다만 나는 장성택(張成澤)이 제2인자로 등장한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입니다. 2인자가 군부에서 나올 수도 있습니다. 테크노크라트가 부상할 수도 있으나 그가 고위직에 오르려면 김정일과 긴밀한 개인적 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김정일체제 아래서의 남북관계는 어떻게 될 것으로 봅니까. 『김정일이 남한측 인사들과 만나게 될 것으로 믿습니다. 남북한 지도급 인사들간에 접촉도 늘어날 것입니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남한이 먼저 관대해져야 하고 이런 관대함 위에서 두가지 일을 해야 합니다. 하나는 북한의 고위급 인사들에 대한 사면(Amnesty·전쟁책임 인권탄압 등에 대한 사면)이고 다른 하나는 통일이 되더라도 북한에 남겨놓고 온 남한사람들의 재산을 다시찾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는 일입니다』 〈워싱턴〓이재호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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