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부당한 미국의 자동차 압력

  • 입력 1997년 9월 13일 18시 22분


미국의 한국에 대한 통상압력이 너무 지나치다. 미국은 모든 통상협상에서 늘 고압적인 자세였지만 이번 워싱턴에서 열린 사흘간의 한미자동차협상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미국은 이번 협상에서 관세인하와 내국세제 개편을 포함한 7대 쟁점의 일괄 수용을 요구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지 않을 경우 미국의 슈퍼 301조에 의한 우선협상대상국 지정을 검토하겠다는 으름장을 놓았다. 그것은 협상이 아니라 일방적인 굴복을 강요하는 횡포다. 미국의 요구가 얼마나 부당한지는 스스로가 더 잘 알 것이다. 미국은 현행 8%인 관세를 자국수준인 2.5%로 낮추고 엔진배기량 기준으로 돼 있는 자동차 관련 세금을 자동차가액기준으로 바꾸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승용차 관세율 8%는 유럽연합(EU)의 10%에 비해 낮은 편이며 상용차의 경우는 우리가 10%인데도 미국은 25%를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다. 더구나 관세인하나 내국세제 개편은 조세주권의 문제이지 통상협상의 대상이 아니다. 자동차 관련 세금은 세수(稅收) 환경 국내산업정책과 연계하여 검토해야 할 사항이다. 이를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조세주권의 침해이자 내정간섭이다. 매년 한국은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지난 85년 50%였던 승용차관세율을 95년 8%까지 낮추고 중대형차의 특별소비세도 25%에서 20%로 내리는 등 성의를 다 했다. 한국측은 이번 협상에서도 자체품질검사를 거친 항목의 완성검사 면제, 2000년 이후 자가인증제도 도입, 미니 밴에 대한 승용차분류 시점의 연기, 외국산 자동차에 차별적인 지하철공채매입의 시정 등을 약속했다. 그런데도 24일경 재개될 제3차협의에서 합의에 이르지 못해 한국을 우선협상대상국으로 지정한다면 우리도 미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미국의 주도하에 WTO체제가 출범했고 이미 제 구실을 하고 있다. 자유무역주의와 다자간(多者間)협상이라는 WTO체제의 출범정신을 미국 스스로가 무너뜨리고 걸핏하면 슈퍼 301조를 들먹이며 통상문제를 쌍무적인 협상을 통해 힘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염치를 모르는 처사다. 미국의 자동차관련 통상압력은 앞으로도 집요하게 전개될 것이다. 클린턴 제2기 통상정책의 기조가 공세적 특성을 띠고 있고 미국 자동차업계의 압력 또한 거세기 때문이다. 한미간에는 자동차 뿐만 아니라 금융 통신시장 개방 등 통상현안이 산적해 있다. EU와도 주세(酒稅)분쟁의 불씨를 안고 있다. 이들의 압력이 아무리 위협적이라 하더라도 호락호락 굴복해서는 안된다. 일관된 원칙과 설득력 있는 논리로 협상을 해나가야 한다. 그리고 대응은 더욱 합리적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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