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며 생각하며]이환경/용의 눈물과 대선정국

  • 입력 1997년 9월 13일 18시 22분


『껍데기는 가라/4월도 알맹이만 남고/껍데기는 가라』 4월혁명 직후 암울하고도 극심한 혼란기에 한 시인이 그렇게 외쳤었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용」들의 대권 경쟁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정치의 계절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정치는 공백화되어 있고 경제는 사상 최악의 위기 국면을 맞고 있다. 그동안의 대선 주자들의 TV토론을 밤늦도록 지켜보며 그들의 알맹이를 찾아보려고, 혹은 이해해 보려고 참으로 무던히도 애를 썼다. 그러나 아둔한 나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시인은 그의 시에서 다시 이렇게 말했다. 『껍데기는 가라/한라에서 백두까지/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나는 열변을 토하는 그들에게서 향그러운 흙가슴을 찾고 있었다. 한라에서 백두를 뛰어 넘는 민족의 웅지를 찾고 있었다. 그러나 역시 미련하여 볼 수가 없었다. 내가 쓰고 있는 드라마의 제목은 「용의 눈물」이다. 사람들은 그 제목에 대하여 종종 질문을 해온다. 하필이면 왜 「용의 눈물」이냐고…. ▼ 전-노씨의 「눈물」 ▼ 「용상」은 곧 눈물의 자리이다. 「용」이 많이 울수록 백성들이 흘리는 눈물은 그만큼 적어진다. 그 눈물의 의미는 여러가지다. 나라를 걱정하며 백성의 아픔을 함께하는 참다운 의미의 용의 눈물일 수도 있고 고독과 번민속에 몸부림치는 통한의 눈물일 수도 있는 것이다. 해동성군으로 불리는 세종은 위대한 인물이었지만 그가 가정적으로 불행한 임금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적다. 아버지 태종에 의해 처가가 멸문되는 뼈저린 아픔을 겪었고 부정한 며느리들을 두 차례나 폐출하기도 했다. 그리고 훗날 병약한 아들 문종에 이어 등극한 어린 단종이 자신의 아들 세조에게 참살당하기에 이른다. 그에 앞서서 태종 또한 이복동생과 처남들, 그리고 사돈 집안을 멸문시키는 과정에서 통한의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그것은 왕국의 안정과 문치의 시대를 열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으로 궁극적으로는 백성들을 위한 눈물이기도 했다. 때문에 그는 평생을 진정한 주변사람 하나 없이 고독 속에서 죽어간다. ▼ 희망찬 내일 열어달라 ▼ 그렇다면 과연 한국 현대사의 용들이 흘린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하와이로 망명한 이승만의 눈물, 부하의 총탄 속에 비명에 간 박정희의 눈물, 감옥에 갇혀 있는 전두환 노태우의 눈물…. 그 비참한 말로에 흘렸던 그들의 눈물은 과연 진정한 용의 눈물이었던가. 그리고 칼국수를 먹으며 백성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려 안간힘을 썼던 지금의 용은 아들의 망동으로 인해 그야말로 칼국수의 눈물을 흘리고 있지 아니한가. 지금 우리 백성들이 대선 주자들에게 바라는 것은 정직과 올바른 가치관, 그리고 21세기에 대한 비전이다. 아시아의 용이 미꾸라지로 전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벅찬 희망과 감동의 내일을 가져올 용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이지도 않는 미로속에서 우리 백성들은 뭘 그리 들떠 있고 기대하면서 밤이 늦도록 TV앞에 앉아 있는가. 현재의 대선주자들에게선 21세기의 한국 대통령상이 보이질 않는다. 사실상 폭군이었던 방원조차 왕도정치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세종의 치세를 위한 발판을 만들었고 정도전은 원대한 이상으로서의 요동회복과 민본주의를 뿌리내리려는 신권주의의 이상이 있었다. 중요한 건 승부의 결과가 아니라 그 과정이다. 집권만 바라는 욕망이 오늘의 여러가지 폐해를 낳고 있는 것이다. 꼭 되어야 한다는 생각보다 안되어도 좋다는 용기가 필요한 때다. 이환경(KBS드라마 「용의 눈물」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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