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속셈 모호한 부도협약개정

  • 입력 1997년 9월 1일 20시 50분


부도유예협약 대상기업을 선정하기 전에 경영권 포기각서나 노조의 자구노력동의서를 받기로 협약을 고친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정 의도가 정부 말을 듣지 않는 기아(起亞) 길들이기에 있지 않느냐는 의혹 때문에 뒷맛이 씁쓸하다. 협약운용에 개입하지 않는다면서도 뒤에서 금융단을 조종해온 정부가 스스로 행정력의 한계를 드러낸 듯한 인상이다. 금융단이 부도유예에 앞서 경영부실에 책임이 많은 기업주나 전문경영인을 문책하고 인원감축 등 자구노력을 보장받겠다는 취지는 탓할 수 없다. 대농과 진로 기아사태가 이런 문제로 수습에 진통을 겪어왔기 때문이다. 종합금융사와 생명보험사를 협약에 참여시킨 것도 효율성 차원에서 잘한 일이다. 결국 문제점을 보완하면 될 것을 폐지 운운하며 혼란을 초래한 정부의 태도는 경솔했다. 그러나 부도유예기간을 연장할 수 있던 종전 조항을 고쳐 두달로 못박은 대목은 잘못됐다. 회생 여부의 판단과 자산 실사(實査)를 두달 안에 마치기는 어려울 수 있다. 또 주식포기각서와 경영진퇴진 요구를 모든 기업에 획일적으로 적용하면 부작용이 우려된다. 때로는 회사사정을 잘 아는 기존 경영진을 활용해 사태를 수습하는 융통성이 필요할 것이다. 중소기업을 부도유예 대상에서 제외하여 형평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았으나 이번 협약 손질에서 이 부분이 빠진 것도 아쉽다. 기아 압력용으로 협약을 고쳤다는 지적과 관련, 『기아에 불리한 사항은 소급 적용하지 않겠지만 유예기간이 끝나면 연장하지 않을 것』이라는 재정경제원 관계자의 발언은 앞뒤가 맞지 않고 군색하다. 정부가 의심을 받지 않으려면 정책의 목적과 절차가 투명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것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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