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문정희/비극으로 끝난 「다이애나 동화」

  • 입력 1997년 9월 1일 08시 10분


동화는 비극으로 끝났다! 이제 사람들은 기를 쓰고 쫓아다니며 동화를 짓밟아버린 삭막한 도시에 남아 소음과 빠른 정보만이 난무하는 사막을 슬프게 살아가야 할 것이다. 아름다움과 명예와 돈을 한몸에 지니고도 결코 행복하지 못했던 다이애나 전 영국 왕세자비가 그를 쫓아다니는 파파라치들에게 쫓기다가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숨졌다는 소식은 실로 충격이었다. ▼ 모든 영욕을 한몸에 ▼ 그녀의 최후는 형체도 알아볼 수 없으리만치 쭈그러진 그녀가 탔던 자동차처럼 그렇게 상징적이기만 하다. 그녀는 이 시대 한 여성이 지닐 수 있는 모든 영욕을 한 몸에 지닌 동화 속의 신데렐라였다. 대영제국의 왕세자비였고 왕자들의 어머니였으며 이혼녀였고 자주 염문을 뿌리는, 세상의 잣대로 보면 불륜의 여성이었다. 이렇게 극과 극을 한 몸에 지닌 여성이 있을까. 그녀가 금세기 최고의 우아함을 보이며 치렀던 그 눈부신 결혼식을 아직도 기억하는 이가 많다. 그러나 작년 봄이던가. 나는 다이애나가 살고 있다는 런던의 쓸쓸한 궁앞에서 한장의 기념사진을 찍으며 그녀가 왜 이혼을 택했는지를 온몸으로 실감했다. 그녀의 궁전은 젊고 아름다운 개성을 지닌 여성이 전통과 법도와 우아함만을 내세우며 바람기많고 권위있는 남편을 떠받들고 살기엔 너무 넓고 아울러 너무 좁았다. 설화속의 공주들과는 달리 그녀에게는 자유혼이 있었다. 『누구라도 제 정신이라면 오래전에 떠났을 것이다』라고 한 인터뷰에서 그녀는 분명히 밝혔지만 그러나 왕위 계승서열에 올라있는 아들 때문에 이곳에 머물러 있다고 그녀는 또한 담담하게 강조했었다. 기실 처음 스무살의 아름다운 다이애나가 찰스 왕세자와 결혼을 할 때에도 「어쩔 수 없는 결혼」이었다는 설은 파다했었다. 그러나 그 결혼은 잠시 행복한 듯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결국 파경에 이르고 말았다. 다이애나는 거식증에까지 걸리는 등 찰스와의 무난한 결혼을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 적도 있었다. 또한 에이즈 암 심장병 연구를 위해 기꺼이 나섰고 대인지뢰 사용금지를 위한 일에도 열정을 바쳤다. 이런 일들은 이혼 후에도 이어졌지만 그녀의 사생활을 시시콜콜히 쫓는 자들에게는 번번이 야외드레스를 입고 호화로운 모임에나 서있는 지극히 사치롭고 흥미로운 분위기 속의 그녀만 노출되었다. 최근에는 심지어 포르노에 가까운 반라의 사진이 전세계의 전파를 타기에 이르렀다. 소위 파파라치라고 하는 이 사진사들은 이렇게 남의 인생을 끔찍하게 파헤친 대가로 몇억원에서 크게는 한번에 10억원이 넘는 돈을 챙겼다고 한다. ▼ 선정주의에 행복 파괴 ▼ 결국 다이애나로 상징되는 신데렐라의 행복은 센세이셔널리즘을 추구하는 현대 산업사회속에 무참히 파괴되어 버린 것이다. 그녀를 죽인 것은 동화 대신 주문을 즐기려는 현대의 천민자본주의였다. 탐욕스러운 상업주의 언론과 한시도 그녀를 편안하게 내버려두지 않는 대중이었다. 아름다운 여성을 우아한 왕비나 왕세자의 어머니로 보기보다는 하나의 성적 대상으로 보려는 시각이 그녀를 죽인 것이다. 나는 이 시대 여성의 자아와 개성과 자유혼을 예찬하고 실천하는 여성으로서 조용히 물어본다. 이 시대의 진정한 공주가 있을까하고. 그리고 이렇게 대답한다. 귀족과 천민이라는 신분 차별의 문제가 아니라 고상함과 고고함과 존귀함의 상징으로 나는 공주를 아끼고 사랑했노라고. 이제 그녀가 소원했던 대로 다이애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여왕」으로 남게 될 것이다. 다이애나, 그녀의 죽음을 애도한다. 문정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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