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최귀인/어머니의 돋보기 안경

  • 입력 1997년 8월 30일 08시 22분


요즘 「늦둥이」라는 신종어가 있다. 예전 형제가 많던 시절에는 막내가 딸이면 「끝네」라 했고 아들이면 「막둥이」라 했다. 나는 남매의 끝으로 태어나게 됐다. 내 기억 속의 어머니는 무슨 일거리만 잡으시면 안경을 찾으셨다. 우리 남매가 수선을 떨며 뛰어놀 때면 안경다리 다친다고 호통을 치셨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학교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 『학교 다녀왔습니다』 하고 인사라도 드릴라치면 어김없이 돋보기 안경 너머로 눈을 치뜨고 보셨다. 그때 어머니의 하얀 눈과 마주치면 어찌나 화가 잔뜩 난 모습으로 보이는지 괜스레 고개를 푹 숙이고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애썼다. 다른 친구의 엄마들처럼 곱지 않으셨던 어머니. 나는 자라면서 그게 불만의 대상이 될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나이드신 어머니를 볼 때면 나는 누차 입버릇처럼 나만은 나이를 먹어도 어머니처럼 살지 않으리라 다짐을 해 보고 했었다. 엊그제 오후에는 마침 집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초인종이 울리기에 더위에 지쳐 있을 아이를 생각해서 안경을 낀 채 달려나가 현관문을 열어주며 『오늘 더워서 힘들었지』 하고 반색을 했다. 그런 나에게 아이는 『엄마』 하며 목소리의 톤을 높이는게 아닌가. 그제서야 나는 속으로 「아차」 하고 외며 돋보기 너머로 아이를 칩떠봤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는 재빨리 안경을 벗어 손에 쥐고 아이를 다시 쳐다봤다. 그제서야 아이의 얼굴에는 미소가 맴돌았다. 내가 어머니의 그런 모습이 싫었던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내가 그 흉내를 내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십 중반을 넘어서면서 느닷없이 찾아온 노안. 어두워지는 눈으로 이제는 돋보기 안경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고 여행을 할 때면 기차표의 좌석번호를 보는 일까지 어려워졌다. 행여 어디 가서 실수라도 할까 봐 집을 나설 때면 으레 두툼한 안경집을 챙겨야 하는 입장이 된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세월이 덧없음을 느끼게 된다. 최귀인 (전북 익산시 창인동1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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