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462)

  • 입력 1997년 8월 8일 07시 26분


제8화 신바드의 모험〈115〉 나의 일곱 아내들은 몹시 실망한 얼굴들을 한 채 멀거니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하긴 그녀들이 내가 하는 아랍어를 잘 알아듣지도 못했겠지만 말입니다. 『오, 제발! 제발 그런 눈들로 나를 쳐다보지 마세요. 내 몸과도 다를 바 없는 나의 일곱 아내가 나를 그런 눈으로 바라보는 건 정말이지 견딜 수가 없군요. 그래요. 나도 인간입니다. 그래서 나도 늙어갈 것이고 그리고 언젠가는 죽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두려워하는 건 내가 늙는 것이나 죽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둘도 없이 사랑하는 나의 아내들이 나를 그런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랍니다. 제발 내 말을 좀 들어보세요. 내가 인간이라는 것은 죄가 아니랍니다. 내가 인간이기 때문에 그대들을 이토록 사랑할 수 있는 것이랍니다』 그러나 나의 일곱 아내들은 나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녀들은 갈피를 잡지 못하는 표정들로, 혹은 근심으로 가득 찬 표정들로 저마다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녀들이 가버린 빈 자리에 서서 정말이지 나는 죽어버리고만 싶었습니다. 그날 밤 나는 늦도록 어디랄 것도 없이 혼자 헤매고 돌아다녔습니다. 하늘에는 무심한 별들만 반짝이고 있었는데, 그날 밤처럼 별들이 야속하게 느껴진 적은 없었습니다. 밤이 깊어서야 나는 돌아왔습니다. 처소로 돌아와보니 나의 일곱 아내들은 한 덩어리로 부둥켜안은 채 울고 있었습니다. 내가 들어서자 아내들은 나에게로 달려오더니 저마다 내 발치에 엎드려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일곱 자매 중 상대적으로 가장 빨리 아랍어를 익힌 제일 큰 언니가 더듬거리며 말했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신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슬퍼하는 것이 아니랍니다. 당신이 신이든 신이 아니든 우리한테는 매한가집니다. 우리는 모두 당신을 사랑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우리의 아버지와 백성들은 다르답니다. 당신이 피를 흘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당신도 신이 아니라 우리들과 똑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게되면, 사람들은 실망감을 이기지 못하여 당신을 죽여버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낳게 될 당신의 일곱 아이들도 말입니다』 듣고 있던 나는 볼멘 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럼 나더러 이제 어떻게 하란 말인가요?』 내가 이렇게 말하자 아내는 달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답니다. 『오, 여보! 제발 우리를 야속하게 생각지 마세요. 당신은 이제 이 나라를 떠나셔야 합니다. 당신과 당신의 아이들을 위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이 나라 백성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지 않기 위해서 말입니다』 과연 일국의 공주다운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왈칵 눈물을 쏟고 말았습니다. 그날밤 나와 나의 일곱 아내는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내가 신이 아니라는 사실이, 나도 몸에서 피를 흘리고, 세월이 흐르면 늙고 그리고 죽는 인간이라는 사실이 그때처럼 억울하고 슬펐던 적은 내 생애를 두고 다시 없었을 것입니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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